‘길’이란 우리말의 어이없는 변천사  _  2009.12.4
우리말에 ‘길’이란 것이 있다. 사람 키의 한 길이를 말하며, 길이의 단위로서  여덟 자 또는 열 자로 사용되기도 한다.

그래서 ‘길차다’는 말도 있다.

원래는 ‘사람 키보다 높은 나무들이 우거진 모습’을 뜻하다가 나중에는 ‘상당히 길다’는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이 ‘길차다’가 변해서 칠칠하다는 말이 나왔다. 칠은 길의 변형 발음인데, 강조하다보니 칠칠로 변한 것이다. 따라서 ‘칠칠하다’는 ‘길게 쭉 잘 자란 모습’을 뜻하는 말이다.

키 큰 사람이 바로 칠칠한 사람인 것이다. 얼마 전 키 작은 남자를 루저라고 했다가 난리가 났었지만, 오늘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바로 그 루저 파동 때문이다. 그러니 ‘칠칠 파동’이라 해야 하겠다.

그러니 칠칠하다는 원래 좋은 의미의 말이었고, 칠칠맞다는 말 역시 ‘키가 훤출하고 잘 생겼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그렇지 않은 상태, 왜소하고 볼 것이 없는 상태를 일러 ‘칠칠하지 않다’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그런데 칠칠하다는 말의 의미가 세월이 흘러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겨나면서 어느덧 의미가 거꾸로 되는 의미전도 현상이 생겨났다. 반대 의미로 쓰이게 된 것이다. 그러다보니 ‘칠칠맞다’는 말이 등장했다. 우리말에서 ‘맞다’는 표현은 부정적인 의미로 잘 쓰이기 때문이다.

‘칠칠’이란 것이 좋지 못하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면서 발음이 변형된 ‘띨띨하다’ 또는 ‘띨띨맞다’는 속어체 표현이 등장했다. 현대의 일이다.

그것이 다시 변해서 ‘띠리하다’는 말도 생겨났다. 말은 이처럼 시간을 두고 보면 참 대책없이 변해가는 법이다.

야이, 띨띨한 놈아, 야이, 띠리한 놈아. 주로 군대 복무 시절에 많이 들었다. 또 ‘띨띨이’란 말도 사용되었다.

그러다가 몇 년 전부터는 또 변해서 ‘찌지리’, 또는 ‘찌질이’란 말도 흔하게 사용되고 있다.

또 변해서 마음에 들지 않는 남자를 두고 ‘찌질남’, 여자를 ‘찌질녀’라 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띨빵하다’는 말도 생겨났다. 띵빵은 ‘얼빵’이란 속어와 결합되어 변형된 것이다. 얼빵은 얼굴이 못 생겼다는 말에서 출발해서 어리숙하고 좀 센스가 떨어지는 경우를 두고 하는 속어로 변해온 것으로서, ‘어리바리’에서 변형된 ‘어리버리’와도 관계가 있다.

이처럼 구어와 속어는 사정없이 변해간다. 언어의 현실 세계이고, 세월이 흐르다보면 원래의 의미는 전혀 사라져버리고 그 뜻도 기억하지 못하게 된다.

언어야말로 ‘사정없이 민주주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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