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문제와 통일의 전망에 대하여  _  2009.12.14
이 문제에 대해 글을 쓰려고 하니 많은 생각들이 교차한다. 그동안 때때로 이 주제에 대한 글을 써왔지만 어떤 면에서 처음으로 종합적인 그림을 밝히고자 하기 때문이다.

어떤 일이나 물건이든 ‘아닌 것은 시간이 지나면 절로 아님이 드러나게 마련’이다. 이는 세상의 자연스런 理致(이치), 인간과 역사와 세상을 관통하는 自然(자연)의 理法(이법)이다.

그렇기에 나는 어떤 이가 자기주장을 해오면 말로는 ‘그렇군요’ 하고 고개를 끄덕이지만, 내심 어떤 긍정도 부인도 하지 않는다. 그것은 시간이 지나면 절로 是非(시비)가 가려지기 때문이다.

젊은 날 是(시)와 非(비)의 문제는 뜨거운 관심사였고 歷史(역사)의 大義(대의)에 관한 뜨거운 가슴은 세월이 흐른 지금에도 하등의 변함이 없다.

다만 개인의 좁은 소견과 지식으로 저 넓고 큰 세상에서 벌어지고 펼쳐지는 일들의 善惡(선악)을 함부로 가린다는 것이 얼마나 우매하고 치졸하며 또 위험한 일인가를 또렷하게 깨닫게 되었다.

젊은이에 비해 나이 든 자가 지혜로울 수 있는 구석이 있다면 바로 이런 까닭이리라.  

그런 면에서 음양오행에 대한 연구를 통해 세상과 자연에는 사물의 옳고 그름을 판별해주는 시간의 理法(이법)이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내 일생에 걸친 실로 커다란 수확이었다.

시간이 판정해준다고 해서 막연히 무한정 그 판정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理法(이법)이라 부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거기에는 ‘언제까지’라는 단서가 붙게 된다.  

아닌 것, 될 수 없는 것은 짧게는 6일에서 6개월, 좀 더 길게는 6 년 또는 36 년, 또는 72 년, 144 년, 이런 식으로 그 시비가 판가름이 난다.

가령 남북한의 문제에 대해 우선적으로 돌이켜 볼 것은 1950 년에 터진 6.25 전쟁이 있다.

몇 년 전 우리 내부에서 이념 갈등이 한창이던 시절, 어느 교수가 6.25 전쟁은 북에 의한 통일전쟁이었으며, 미국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통일과업이 성취되었으리라는 주장을 한 적이 있고 그로 인해 꽤나 시끄러웠던 적이 있었다.

능히 그렇게 볼 수도 있다고 본다. 더욱이 민주사회는 어떤 누구의 어떤 주장도 용인하는 제도가 아니겠는가.

그러니 일단 객관적 제3자의 입장에 서 보기로 하자. 그 입장에서 볼 때, 6.25 전쟁은 북한식 사회주의 체제가 옳은 것인지 아니면 남한식 자본주의 체제가 옳은 것이지를 가리기 위한 전쟁이었다.

그와 더불어 당시 우리가 소련과 중국이라는 대륙 세력과 친교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아니면 미국과 일본이라는 해양 세력과 친교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를 놓고 벌어졌던 치열한 갈등의 와중에서 그것을 무력으로 정리하고자 했던 전쟁이기도 했다.

아울러 그 전쟁은 큰 차원에서 본다면 당시 대치 상태로 들어가 냉전을 펼치던 세계의 두 강자, 미국과 소련이 잠시 타진해 본 제한적이고 시험적인 성격의 전쟁이기도 했다.
  
어느 쪽의 대의가 더 옳았던 것일까? 우선 이 문제에 가치 판단은 유보하기로 하자, 각자의 입장에 따라 생각이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자는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사회주의를 더 선호하든 자본주의를 더 선호하든 모두 일단은 옳다고 보자는 것이다.

실로 이 거창한 문제에 대한 해답은 말 몇 마디를 그럴 듯하게 포장한다고 해서 그리고 제법 치밀한 논리를 전개한다고 해서 판정 날 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한 결론은 앞서 말한 自然(자연)의 理法(이법)을 적용하면 이미 분명하게 제시되었다.

여기서는 36 년의 試金石(시금석)을 적용해보면 된다.

전쟁이 발발한 1950 년은 庚寅(경인)년이었고 그로부터 36 년이 지난 1986 년은 丙寅(병인)년이다.

庚寅(경인)의 庚金(경금)을 丙寅(병인)의 丙火(병화)가 衝(충)하는 때를 보면 알 수 있는 것이다.

6.25 의 참화와 폐허로부터 북한도 우리 남한도 모두 필사의 노력을 통해 복구를 하고 발전을 도모했다.

그리하여 과연 어느 쪽이 歷史(역사)의 大義(대의)였는가는 36 년이 지난 1986 년으로서 답이 나온 것이다.  

1986 년은 우리 대한민국이 그 10 년 전인 1976 년을 전후한 엄청난 중화학 공업에 대한 투자가 처음으로 성공의 빛을 보았던 해가 되었다.

사상 처음으로 무역 흑자를 기록했고 이어 1987 년에는 엄청난 도약을 경험할 수 있었다. 이로서 대한민국은 선진공업국 대열에 본격 진입하기 시작했고 1988 년에는 올림픽이라는 거국적인 행사를 성공리에 수행했다.

이로서 6.25 전쟁에 대한 대의와 정의는 36 년이 지난 1986 년의 시점에 와서 자본주의를 택하고 미국과 일본이라는 해양 세력과 친교한 대한민국의 현저한 승리로 귀결이 났다.  

동시에 그로서 남북 모두 독재자이자 애국자였던 두 사람의 지도자 경쟁에서 주체사상을 앞장 세웠던 김일성에 대한 수출입국을 내세운 박정희의 압도적인 승리로 마무리가 되었다.  

그런 뒤, 우리 대한민국은 경제의 기반 위에서 민주주의를 이룩했고 선진 공업국 반열에 들어갔으며 오늘날과 같은 찬란한 고도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다.

반대로 북한은 ‘세계 기아 지수(GHI)’에 대한 글에서 보듯이 아프리카를 제외하고 나머지 모든 나라에서 유일하게 백성을 餓死(아사)케 하고 굶기고 있는 야만의 상태, 그러면서도 오로지 소수의 권력유지에만 집착하는 더 이상 비참할 수 없는 경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객관적인 수치를 보아도 그런 차이는 명확하다.

2008 년 북한과 남한의 1인당 총생산액을 실질 구매력 기준으로 비교하면, 북한은 1800 달러였고 우리는 27,700 달러, 총 규모 면에서 북한은 400 억 달러이고 우리는 1 조 3380 억 달러였다.

1인당 생산액에서 15 배 이상, 총 규모에서 33 배의 차이가 난다.

게다가 1969 년 당시 북한이 우리보다 경제면에서 대략 30 % 정도 앞서고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차이는 더 이상의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물론 오늘날 우리가 북한보다 인권이나 정치적 자유도에서 월등히 앞서고 있다는 점 또한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니 지금도 역사의 대의에 대해 답이 주어지지 않았다고 한다면 그것은 억지인 것이고 역사의 심판관으로부터 퇴장 명령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니 앞서 얘기했던 바, 6.25  전쟁이 통일 전쟁이었고 그 대의는 북한에 있다고 주장했던 모 교수의 주장은 실로 눈 먼 盲目(맹목)의 주장이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할 것이다.

36 년이라는 시간의 理法(이법)은 절로 시비를 가려주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오늘날에도 존재하는 우리 사회의 일부 의견, 북한에 의해 통일이 이루어졌어야 한다고 믿는 생각은 젊은 날 지녔던 자기 확신과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아련한 향수 같은 것 그 이상은 될 수 없을 것이다. 이에 나는 주변에 친한 친구나 후배 중에서 그런 이들을 만나면 그저 따듯하게 위로해주고 있을 뿐이다. 슬프지만 아닌 것은 아닌 것이 아니겠나고 하면서 말이다.

역사 대의를 가리는 이 게임은 1986 년으로서 끝이 났다. 그 이후로 북한은 시간을 끌면 끌수록 백성만 괴롭히는 상태로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김일성은 고집과 집착을 버리지 않고 핵을 통해 마지막 게임을 시도하다가 1994 년에 사망했고 그것을 유업이랍시고 이어받은 김정일은 부단히 핵을 가지고 살 길을 도모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답은 이미 나왔기에 미련만 잔뜩 남은 것이다. 그러나 ‘세상의 이치’는 남은 미련이라고 해서 언제까지 그냥 마냥 내버려두거나 방치하는 법은 없다.

답이 나온 1986 병인년으로부터 다시 36 년이 주어지는 것이니 그것이 억지로 우기면서 버틸 수 있는 최대한의 시간이다. 그 때가 되면 제 아무리 버티고 싶어도 더 이상 버틸 수 없게 하는 그 무엇들이 생겨나서 마무리를 지어주는 것이 세상의 이치인 것이다.

그러니 그 시점은 2022 壬寅(임인)년이 된다.

북한이 버틸 수 있는 최대한의 시점이 2022 년이라는 얘기이다.

그러나 버틸 때까지 버티다가 무너지면 그로 인한 남북한 우리 겨레 모두의 피해 또한 극대화될 것이다.

그러니 다소나마 충격을 완화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를 궁리해보게 된다.

현 시점에서 가장 바람직한 것은 2022 년으로부터 10 년 전인 2012 壬辰(임진)년부터 북한이 살 길을 찾아 나오는 길이다.

앞글 보즈워스의 방북 성과를 얘기하는 글에서 이런 말을 했다.

북한은 2012 년까지 핵보유를 미국으로부터 인정받고, 아시아의 경제 호랑이(economic tiger)가 됨으로서 강성 대국을 이룩한다는 목표를 제시함으로써 주민들로부터 통치의 정통성을 겨우 유지해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음양으로 사물을 보는 내 눈에는 2012 壬辰(임진)년이 되면 북한이 더 이상 현재의 야만 독재 상태를 이어갈 명분도 사라지게 된다는 말을 했다.

바로 2012 년의 시점에서 북한이 체제를 포기하고 거국적으로 우리와의 협력을 통해 살 길을 모색하기 시작한다면 더 이상 없는 우리 겨레의 행운이라 하겠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가장 확률이 높은 시점은 그로부터 2 년이 지난 2014 甲午(갑오)년이라 하겠다. 그래서 그 시점을 북한 체제의 합리적 종말점이라는 말을 앞선 글에서 했었다.

내 말은 2012 년부터 북한 체제의 종말을 향한 카운트 다운이 시작된다는 것이고 가장 확률이 높은 때는 2014 년이라는 것이다.

2014년은 甲午(갑오)의 해다. 甲午更張(갑오경장)이란 말을 들어보셨을 것이다.

이처럼 갑오의 해는 우리가 크게 각성을 하는 때이기에 김정일 위원장이 뒤늦게나마 각성을 하거나 또는 등 떠밀리거나 아니면 다른 내부 세력에 의해 그러하든 상관없이 하나의 좋은 기회인 것이다.

이 해에 남북한이 통일을 향한 기본적 합의를 이루고 10 년 정도에 걸쳐 통합으로 가는 단계별 코스를 만들어낸다면 큰 무리 없이 통일 과업은 달성이 될 것이다.

그러나 좋은 길을 거부한다면 그 다음 확률은 2020 庚子(경자)년이 될 것이다. 이는 남과 북의 별도 정부 수립이 1948 년 戊子년이었기에 그로부터 72 년이 지난 시점이 바로 2020 년이 된다는 점이다.

이때부터는 평화적 합의에 따른 통일의 코스가 아니라, 급변하는 사태로 인한 붕괴가 있고 그로서 통일이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니 이 시기부터는 엄청난 부담과 비용 문제가 우리 모두에게 실로 감당하기 어려운 짐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겨레의 통일은 당연한 것이니 어떤 시련도 견디고 타고 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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