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心(무심)하길 권하는 겨울 저녁에  _  2010.1.27
생각이 없을 때 창밖을 보게 된다. 눈이 내린다.

포실한 눈이 垂直(수직) 방향이니 바람이 없나 보다. 문장의 마침표를 찍고 고개를 돌리니 斜線(사선)으로 내린다, 바람이 이나 보다.

바람처럼 일정치 않은 것, 無常(무상)한 것도 드물다 말하지만, 그 무상함도 사람의 마음과 생각에 미치지는 못하리라.

道家(도가)에서는 바깥 물건, 外物(외물)에 속마음, 內心(내심)이 휘둘리지 않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속마음은 主(주)고 바깥물건은 客(객)이니 주가 객에게 휘둘리면 그를 일러 主客顚倒(주객전도)라 함이니 어찌 한 세상 편히 지내다 가겠느냐고 말하고 있다.

그러니 우리 마음과 생각이 바람처럼 變化(변화)가 갈래인 것은 주가 객에게 흔들리는 현상이라는 얘기이다.

外物(외물)이란 무엇인가?

욕심나는 물건, 겁이 나는 일, 싫은 일, 좋은 일, 미운 놈, 고운 놈, 이런 모든 것이 바깥에 있는 물건이다. 五慾(오욕)과 七情(칠정)을 일으키는 모든 것들이 곧 외물이다.

사람이 사람인 이상 주인인 속마음이 외물인 객에게 더러 끌리기도 하겠지만, 마침내 끌려가서 거기에 얽매이면 한 평생의 삶이 고단해진다는 것이 道家(도가)의 가르침이다. 따라서 그 끌려가는 마음을 수시로 이쪽으로 돌려놓을 줄 알면 반대로 편히 살 수 있다는 얘기이다.

오래 살기 위해 養生(양생)의 法術(법술)을 익힌다 해도 또한 거기에 너무 집착하고 끌려다가보면 그것은 반대로 禍(화)를 키우는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도가에서 말하는 養生(양생)의 至極(지극)한 경지는 그저 내심으로 하여금 외물에 끌려 다니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여기에 좀 더 潤氣(윤기)를 더하는 말로 수식하면 죽음과 삶이 하나인 것을 진실로 체득할 것 같으면 그것이 바로 위가 없는 無上之道(무상지도)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 말은 여전히 어렵다, 죽음과 삶이 과연 하나인 것인지.

주인인 內心(내심)으로 하여금 객인 外物(외물)에 끌려 다니는 일이 없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에 그 내심을 비워두라고 가르친다.

비워둔다는 것은 虛(허)하게 하라는 것이다.

내심을 虛(허)로 유지하면 곧 靈(영)하게 되리니 虛靈(허령)한 마음을 가지도록 노력하라고 가르친다.

虛靈(허령)이란 外物(외물)이 內心(내심)으로 들어와 끌어 다니고자 할 때, 담을 쌓고 굳이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일단은 접대하되, 응대를 마치는 즉시 다시 虛(허)로 돌아오는 것을 말한다.

눈앞에 미인이 다가오면 그 미인을 보되, 미인이 가고나면 미인을 지워버리는 내심의 상태를 허령하다고 하는 것이다.

고요한 수면 위에 돌을 던지면 주름이 일지만 잠시 후 물은 다시 고요해지는 것을 배워보라는 것이다.

현실은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세상이고 출세하려면 일단 튀고 보라는 세상이다. 가만히 있으면 그 자체로서 뒤처진다며 겁마저 주는 세상이다. 그러니 냅다 앞으로 뛰어가라고 재촉하는 세상이다.  

이 세상은 왜 이리도 사람들을 외물 쪽으로 끌어들이려는 드는 걸까? 끌어들여서 무엇을 어떻게 얼마나 얻어 보겠다는 것일까? 냅다 내지르는 그 ‘앞’이란 과연 어느 방향이란 말인가?

爭論(쟁론)하고픈 마음은 없으니, 그래 어느 쪽이 옳은 것인지 모르겠다는 정도로 두기로 하자.

道士(도사)는 도사의 길로, 世俗(세속)은 세속의 길로 가봄도 좋을 것이니.

그러고 보니 눈은 그치고 날은 저물고 있다. 멀리 땅위 젖은 눈을 퉁기며 달리는 자동차 타이어 소리만 들려온다.

눈 그친 저녁은 도사의 세계, 타이어 달리는 찻길은 세속의 세계인가?

무심결에 쓴 글이다. 독자분들도 하루쯤은 無心(무심)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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