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의 박경리, 님은 道人이었어라.  _  2009.4.11
박경리 씨는 마지막 시집을 통해 본인의 사주를 알려주셨다. 1926 년 음력 10월 28일 술시나 해시라고. 겨울 초저녁이란 말이 붙었으니 술시로 보는 것이 더 합당해 보인다.

그렇게 되면 사주는 이렇게 구성된다.

년 丙寅(병인)
월 己亥(기해)
일 乙丑(을축)
시 丙戌(병술)

을목 일간이 해월에 나서 연간과 시간에 丙火(병화)가 나오고 월간에 己土(기토)가 있으니 천간 짜임이 대단히 좋다. 불과 흙이 서로를 돌보고 있고, 지지에는 인목과 술토가 있어 반드시 대성할 운명임을 알 수 있다.

을축일이니 우선 乙未(을미)년에 어떤 일이 있었는가를 살펴야 한다.

이력을 보니 박경리 씨는 바로 1955 년 을미의 해에 문단에 등단했던 것이다. 과연 그랬구나 싶은 생각.

이 분의 기운은 1955 년부터 30 년간이 오름이고 1985 년이 절정의 때이고 그로부터 10 년 뒤인 1995 년 을해년이면 서서히 물러가시게 된다.

그러고 보니 1969 년에 시작한 토지 집필을 1994 년에 마치셨다.

아주 정확하게 자신의 모든 기력을 다 풀어놓고 그만 두신 것이다.

운세 정점에서 10 년이 지날 무렵 더 이상의 욕심을 부리지 않고 물러가는 사람을 두고 나는 도인이라 부른다.

1955 년에 등단하여 만 40 년이 되는 1994 년에 토지 집필을 마무리했으니 박경리 씨는 도인이셨던 것이다.

운명학상으로 재미난 점은 또 있다.

이 분은 월간의 己土가 用神(용신)인데, 이 분이 대성한 작품의 제목부터가 ‘토지’였다는 점이다.

나무인 을목에게 토는 財(재)가 된다.

그렇다면 박경리 씨가 노년에 전원에서 끊임없이 나무와 작물을 가꾸면서 사셨던 것은 정확하게 본인의 운명이었던 것이다.

더하여 토지 집필이 시작된 것은 1969 己酉(기유)년이다. 바로 용신의 해였다.

마지막 시집에 실린 그저 본인의 얘기와도 같은 시들을 읽어보면 삶의 모든 과정과 사상을 평이하게 정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어투는 무척이나 평이하지만, 우리가 앓고 있는 모든 문제점들을 다 말씀해주시고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할지에 대한 해법도 모두 일러주시고 계셨다.

나는 박정희 대통령을 대한민국의 아버지라고 생각한다. 아주 엄하고 고집스러웠지만 결국 대한민국을 키워낸 보수적이고 가부장적인 아버지 말이다.

스스로도 그런 박정희 대통령이 엄청 미웠다. 너무나 미워서 저런 군바리 밑에서 공무원 따까리 짓은 싫다고 고시공부를 접었을 정도이다.

박정희 대통령을 국부라고 부르니 거부감을 느낄 분들도 많으실 것이다. 하지만 세월의 흐름 속에서 나는 서서히 아주 서서히 그 분을 아버지로 받아들였다.

어쨌든 그 분은 우리 국운이 여름으로 접어들 무렵 떠나셨다. 그리고 김수환 추기경, 그리고 토지의 박경리, 두 분 모두 대한민국의 어머니와도 같은 분들이셨다. 그 분들은 우리 국운이 겨울로 접어드는 문턱에서 떠나셨다.

그러고 보니 우리 대한민국은 이제 고아가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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