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스는 끝이 났다!  _  2009.4.8
자동차 도로마다 규정 속도가 있다. 안전을 감안하여 정해진 속도이지만, 우리는 대부분 이 속도를 무시하거나 위반한다. 그저 카메라에 찍히지 않도록 조심할 뿐이고 어쩌다가 찍혀서 벌금을 물면 재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필자 역시 그렇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하는 말이 나름 충분한 타당성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우리의 경우 속도위반이 만성화된 셈이니 이런 위반은 우리의 모든 생활과 문화, 체질에 반영되어 있을 것이다.

우리는 빠르다. 대한민국은 빠른 나라이다.

우리가 이토록 빨라진 것은 무엇 때문일까?

아마도 먼저 달려야 먼저 도착할 수 있는 까닭일 것이다.

그렇다면 어디를 향해 먼저 도착해야 하느냐고 물어볼 필요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묻지 않아도 될 정도로 다 알고 있었고 최소한 알고 있다고 믿어왔기에 목표를 묻는 일은 그간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지난 1960 년대부터.

목표를 이 시점에서 구태여 말한다면 ‘잘 살아보자는 것’이었다. 다만 예전에는 워낙 못 살았기에 다른 나라들처럼 잘 살아보자는 것이었고, 어느 때부터인가는 남부럽지 않게 잘 살아보자는 것이었다. 적어도 내 주변 사람이 사는 것만큼은 살아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목표였다.

그래서 우리들은 뭐든지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안 되면 되게 하라, ‘can do’ 정신으로 줄기차게 밀어왔고 달려왔다. 그리고 그런 정신으로 전 국민이 무장하다보니 느긋한 걸음으로 걸어올 수 없었다.

지금 나이로 45 세 이상의 한국인들은 잘 것 다자고 할 것 다하고 놀 것 다 놀면서 성공을 바란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는 신념에 대단히 투철했다.

가만히 있으면 바로 뒤쳐진다는 강박감이 우리로 하여금 달리게 만들었던 것 같다. 달리다보니 빨라졌고 그 빠름은 우리의 대명사가 되었다.

이처럼 불굴의 의지와 강인한 정신력, 그리고 속도는 우리 대한민국을 불과 40 년 만에 세계 최빈국에서 세계 유수의 선진국 반열에 올라놓은 원동력의 하나였다.

그런데 어느 시점부터는 강한 의지와 속도가 능사가 아니지 않은가 하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대학을 마친 사람이 주로 성공하고 높은 자리에 오르다보니 어느덧 대학 가지 않는 학생이 없는 사회로 변했다. 돈이 없어서 분명히 자녀를 대학에 보낼 형편이 되지 않는 사람도 많을 법도 했다. 하지만 차라리 나는 굶더라도 내 자식만은 대학을 마치게 해서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겠다는 부모들의 의지가 무조건 대학에 가는 사회로 만들었다.

모든 학생들이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대학으로 진학한다는 엄청난 사실을 눈치 챈 우리나라 대학들은 등록금을 야금야금 때로는 대폭 인상해갔다.

대학은 해마다 등록금 인상의 이유로 다양한 근거를 제시한다. 하지만 핑계없는 무덤 없다는 말처럼 아무리 올려 받아도 학생들이 몰려오는 상황에서 인상의 근거 제시는 누군들 하지 못하겠는가.

등록금이 너무 비싸다고 아우성치는 모습도 많이 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학진학은 기본사항이 되었는데 대학들이 등록금을 낮출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결과 자세히는 모르지만 우리 대학의 등록금이 우리보다 훨씬 소득이 높은 일본보다 비싸졌다는 말을 들었다.  

김대중 정부는 누구나 대학에 쉽게 들어가게 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고 그 결과 대학설립을 정원을 대폭 늘림으로써 국민들의 염원과 기대에 부응했다. 하지만 그러다보니 대학교 학부과정은 심한 말을 하면 사실상 초등학교 수준으로 내려갔다.

등록금을 아무리 올리고 강의는 저렴한 시간강사 불러다가 메꾸니 엄청 돈이 남을 것이다. 하지만 남는다는 말은 절대 하지 않는다. 세상에 어느 장사가 남는다는 말을 하겠는가. 건물 짓고 땅 사들이고 등등 돈이야 아무리 남고 많아도 쓸 데 없는 돈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강의의 질이 떨어져도 학생 역시 수준이 떨어지니 피차간에 불만이 없어 그 또한 문제가 없었다.

좋은 일자리, 대기업이나 공기업 일자리가 그간 많이 늘었지만 대학졸업생의 수가 워낙 많다보니 수요와 공급은 도무지 균형을 잡을 수 없게 되었다.

예전에는 대학만 마쳐도 출세한다는 것이 정설이었는데 어느덧 대학졸업장은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기 시작했다.

그러자 눈치가 빠른 학부모들은 대학도 그냥 보통 대학이면 어렵고 소위 명문대가 아니면 말짱 도루묵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래서 서울을 중심으로 하는 대도시의 여유가 좀 있는 학부모들은 과외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여기서도 문제는 더 커져간다. 부의 상징인 압구정동이나 청담동에서 쪽집게 과외를 해서 대박을 터뜨렸다는 근거 없는 소문이 요원의 불길처럼 퍼져나갔고 이에 학부모들은 귀족 과외를 흉내내기 시작했다.

강남 대치동과 여의도 학원가들은 쌍수로 환영했다. 고객의 수요가 있으니 당연 열렬 부응하겠다는 자세로 무수한 유명 강사가 등장했고 학교에서 교편을 잡다가 조금 잘 가르친다는 소문이 나기가 무섭게 거액의 몸값을 받고 사설 학원으로 모셔졌다.

그러자 고등학교 때 투자를 시작하면 늦는다는 생각이 들 것은 당연지사. 나중에는 아예 초등학교 때부터 베팅에 과감한 엄마들이 계를 짜서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글로벌 언어인 영어를 못하면 아프리카 토인 취급을 받는다는 낭설이 떠돌자 정말이지 무리를 백 번 해서라도 영어 교육을 위해 자식과 처를 모두 미국으로 보내는 기러기 아빠들이 대거 등장하게 된다.

하지만 돈 좀 있다는 계층 또한 가만히 손 놓고 있지 않을 것은 불 보듯 뻔한 일. 다시 거액의 투자가 필요한 교육 게임을 창조해낸다. 결과 대안학교란 것도 나오고 여기에 다시 좌절감을 느낀 사람들은 귀족학교, 그들만의 리그가 또 다시 펼쳐진다고 비난한다.

그러니 지금 여기서 우리 대학들을 비판하자는 것이 아니다. 엄청나게 비싼 등록금을 가능케 하는 사회, 비참하리만큼 적은 강사료를 주어도 별 탈이 없도록 환경을 조성해내고 있는 배경에 놓인 바로 우리 자신들, 노후 대비는 신경 쓸 겨를이 없이 오로지 자녀에 대한 교육 투자에 ‘올인’한 우리들, 그리고 기성층에 대한 얘기이다.

부단히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의 투지와 속도가 빛을 발하고 있다.

좋다, 대학으로 부족하다면 대학원까지는 이 애비가 부담하마, 또는 유학비용까지 부담하마, 영어가 필수라 하니 어학연수는 내가 책임지마, 취업에는 다양한 스펙(spec.)을 갖추어야만 한다고 하니 그래 무슨 스펙인 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 뼈가 부러지는 한이 있어도 다 대 줄게.

최근 치킨 게임이란 말이 유행한다. 자동차가 마주하고 달리다가 먼저 겁을 먹는 이가 핸들을 돌리면 지게 되는 게임이다.

어쩌면 세계에서 가장 치열한 치킨게임은 바로 우리나라의 교육 현장이 아닐까 싶다. 아마 그럴 것이다. 잘 살아보자는 마음 하나로 불굴의 의지와 속도로 다져진 우리들은 치킨 게임에 있어서도 한 발의 양보가 없다.

불굴의 의지와 정신력, 자식을 위해서는 자신의 희생을 마다하지 않는 애정, 남보다 근면하고 빨라야한다는 정신, 이 모두 어느 하나 버릴 것이 없는 소중한 정신적 자산이라 하겠다.

그런데 전 구성원이 이런 정신력으로 무장하고 단련되다보니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지독한 역설이란 생각이 들지 않는가.

누구는 자본주의의 천한 정신을 비난하지만, 사실 우리 교육은 자본주의라 하기에도 민망하다. 우리 전부가 상대방이 과감하게 베팅을 하면 이에 금액을 더 얹어 ‘콜’을 외치는 카지노 도박사가 되어버린 것이다.

자본주의든 뭐든 투자에는 합리적 계산이 지배하는 법이다. 성공에서 오는 이득도 따져보지만 실패했을 경우의 손실도 살피는 것이 기본이다. 그러나  우리의 교육은 게임에 졌을 때 닥칠 위험이나 피해는 애써 외면하고 그저 상대의 기를 죽이기 위해 베팅이 연이어 증액되는 치킨 카지노 게임에 몰두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무섭지 않은가? 그 결과가 너무나도 두렵다.

다시 말해 우리는 어느덧 불굴의 의지와 정신력, 자식을 위해서는 자신의 희생을 마다하지 않는 애정, 남보다 근면하고 빨라야한다는 정신으로 무장한 치킨 게임의 승부사가 되어 있으니, 그러다가 어느 순간 모두가 패자가 되어 비참한 결말을 보게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두렵지 아니한가?

교육만 그러하다면 또 나름 여유가 있겠지만, 내집 마련이라는 소박한 당초의 정신이 이제는 집값이 반 토막으로 내리면 즉각 파산으로 내몰릴 수 있는 부동산 도작 게임에 이미 엮어있는 우리이지 않은가.

이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좀 더 벌어서 한 시라도 바삐 경제적 안정을 이루기 위해 증시 펀드에 대거 가입했다가 지금 혼줄이 나고 있다.  

두려움이 더하고 커져만 간다.

남에게 뒤지지 않겠다는 정신, 원래 이런 자세는 대단히 긍정적이고 발전적인 것인데 모두가 그러다보니 오히려 이상해지고 있는 것이다.

역설이 아닐 수 없다.

부지런함, 근면성, 불굴의 의지, 희생정신, 이런 것들은 모두 소중한 정신적 자산이다. 그리고 우리 대한민국 사람들은 거의 빠짐없이 이런 자산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소중하고 귀한 것도 모두가 지니고 있으면 그 결과가 이상하게 된다는 사실이 어찌 역설이 아니겠는가.

지금 우리가 앓고 있는 몸살은 성공에서 오는 몸살이라 본다. 그간 우리가 너무 스스로를 옥죄었던 결과라 본다.

이제 모두가 한 방향으로만 달리는 질주와 레이스를 그만 두어도 될 때가 온 것이 아닐까?

달리는 오토바이에서 잠시 내려 숨을 돌리고도 싶었지만 곁의 사람들이 계속 달려가니 내릴 수도 쉴 수도 없었던 이 레이싱을 그만 두어도 된다는 생각, 어쩌면 레이스를 포기하는 것이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는 이미 결승선을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습관대로 무작정 달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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