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道(도)를 구하는가? -- 도 시리즈 제2회  _  2009.4.8
求道(구도), 그리고 구도자라는 말이 있다.

구도하는 이 역시 매일 길 위를 오가건만 달리 무슨 길을 찾으려 하는 것일까? 아무튼 우리는 구도자란 말을 들으면 어쨌든 숙연한 느낌을 받거나 반대로 냉소적으로 ‘구도는 무슨 구도, 다 그렇고 그런 거지’ 하기도 한다.

도를 찾아 길을 나선 이 중에서 가장 유명한 이는 善財童子(선재동자)일 것이다. 불교 경전인 화엄경에 들어있는 ‘입법계품’에 등장하는 구도자의 얘기이다.

불교 쪽에선 그렇고 기독교로 가면 예수야말로 대표적인 구도자였다.

예수나 석가, 무하마드, 공자, 이런 분들은 종교, 즉 가장 큰 가르침을 전한 사람들이니 아예 논외로 하고 역사를 보면 무수한 구도자들이 그 길을 이었다.

그렇다면 물어보아야 하리라.

왜 어떤 연유로 달리 길을 찾고 구하는가를.

모든 삶의 시간들이 그 자체로서 길이건만 왜 달리 길을 묻는가를.

샛길을 찾는가? 실패하리라.
빨리 가는 길을 찾는가? 빨리 가서 뭐하게.
큰 길을 찾는가? 오솔길도 재미있건만.
탄탄대로를 찾는가? 이미 전국은 아스팔트 포장도로로 산천이 몸살을 하고 있다.

그래도 도를 구하는 이는 적지 않다. 어쩌면 여전히 많은 지도 모르겠다.

귀농하는 이도 실은 구도자이고, 먼 나라를 배낭여행하는 이도 구도자이다. 그냥 경험의 폭을 넓히고자 하는 것보다는 삶의 참다운 길을 찾고자 하는 노력의 일부인 것이다.

생각해보자, 도를 구해서 얻거나 찾으면 무엇이 좋은 가를.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이치를 알고자 하는 이 역시 도를 구하는 이다. 그런 이는 참된 ‘앎’을 통해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고자 하는 것일 수도 있고 또 알게 됨으로써 한 세상 편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발판을 만들고자 함일 수도 있다.

나아가 세상의 이치를 알게 됨으로써 자기 자신의 존재감과 존재의 의미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튼 인간은 궁리하기 좋아하고 알고자 하는 욕구를 지녔기 때문이다.

교회에 가면 무조건 믿으라고 한다. 물론 그런 방법, 일단 믿고 나서 생각은 나중에 하는 방법도 그리 나쁜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무조건 믿기가 어려운 사람들도 있다. 사람의 성질과 생각은 다양하기에 말이다. 그런 사람은 결국 이치에 대한 깨달음을 통해야만 편안해질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 상담해주면서 느낀 바로 사람들은 마음 속에 과거 속에 저마다의 상처가 있다는 점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과거의 상처나 아픔 그리고 현재 소외받고 있다는 생각, 또 장차 소외당할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불안해한다. 그렇기에 제대로 알고 나면, 즉 세상과 삶의 이치를 확고하게 알고 나면 불안해할 필요가 없을 것이니 그 결과 도를 찾고자 할 것이다.

결국 지적 호기심도 있겠지만 사람들이 도를 얻고자 하는 궁극적인 이유는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함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행복하고자 도를 구한다, 또 찾는다.

그러니 우수운 일들이 벌어진다.

역사는 온통 도를 전하겠다는 사람, ‘도에 관심 있으십니까’로 시작해서 도를 찾아 주겠다는 단체, 나에게 오면 도를 얻을 수 있다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역사만 그런 것이 아니라, 오늘에도 그렇고 또 미래에도 그럴 것이다.

그러니 여기서 또 도를 전하겠다고 한다면 실로 웃기는 일이 될 것이다. 그래서 이 “도 시리즈”에서는 그저 도를 곁에서 살펴보는 정도로 그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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