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블로그 주소는 hohodang.tistory.com) 티스토리 블로그엔 자연순환운명학에 대한 더 많은 그림과 동영상 강좌가 계속 올라가고 있다는 점도 알려드린다
율곡 이이는 27세에 수도 한양에서 치르는 문과 覆試(복시)에 1등, 즉 壯元(장원)으로 붙었으며 그 뒤 궁궐 안의 임금 앞에서 치르는 殿試(전시)에서도 장원으로 급제하면서 탄탄대로의 벼슬길을 걸었다.
관리로서의 등용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2차 시험인 복시이고 전시는 합격자 중에서 성적을 매기는 동시에 임금이 장차 신하로 쓸 사람들을 직접 만나보는 기회였다.
나 호호당은 오래 전 이율곡이 복시에서 장원 급제했을 때 나온 문제와 그에 대한 율곡의 답변, 답안지를 접했다. 일반적으로 天道策(천도책)이란 이름으로 알려져 있으며 율곡의 글을 모은 “율곡전서”안에 게재되어 있다.
대략 30년 전에 읽었는데 꽤나 놀랐다. 충격이었다. 아니 이런 게 1등한 사람의 답안이라니 이상하고 또 괴이한 시절이었네 싶었다. 율곡이 이상하다는 게 아니라 당시의 思潮(사조)가 그랬다는 얘기.
먼저 문제가 어떤 것이었는지 소개한다.
문제는 열 몇 가지 정도의 질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중 하나, 바람에 관한 것만 소개한다.
바람은 어디에서 일어나 어디로 들어가는가?
어떤 바람은 나뭇가지조차 울리지 않을 만큼 부드럽게 불고, 어떤 바람은 나무를 꺾고 집을 뽑아버릴 만큼 사납게 분다. 부드러운 소녀풍이 되기도 하고 거센 폭풍이 되기도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이에 대한 율곡의 답변 또한 그 부분, 바람은 어디에서 일어나는가에 대해 답변만 발췌 소개한다.
천지 사이에 가득 찬 것은 어느 것이나 氣(기)입니다.
陰氣(음기)가 한곳에 응결하여 모이면, 바깥에 있는 陽氣(양기)가 그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주위를 맴돌다가 바람이 됩니다.
만물의 기운이 艮方(간방)에서 나와 坤方(곤방)으로 들어간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음기가 모이는 곳에는 일정한 위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양기가 흩어지는 데에도 일정한 방향이 없습니다.
대자연이 기운을 내뿜어 바람을 일으키는 일을 어떻게 한 방향에만 한정할 수 있겠습니까?
동쪽에서 일어나는 바람은 만물을 기르는 바람이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동쪽만을 모든 바람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서쪽에서 일어나는 바람은 만물을 거두고 죽이는 바람이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서쪽만을 바람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굽은 탱자나무에 새가 둥지를 틀고 빈 구멍에서 바람이 생긴다고 해서, 빈 구멍을 바람의 근원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정자程子는 말했습니다.
“올해의 우레는 우레가 처음 일어난 그 자리에서 일어난다.”
저 역시 산들산들 부는 바람은 기운과 부딪쳐 일어났다가 그 기운이 그치면 멈출 뿐, 본래 어디에서 나와 어디로 들어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부드러운 바람과 사나운 폭풍에 대해 얘기드립니다.
정치가 융성한 시대에는 음양의 기운이 편안하게 펼쳐져 막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 기운이 흩어져 바람이 될 때에도 반드시 온화하여 나뭇가지조차 울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도가 쇠퇴하면 음양의 기운이 답답하게 막혀 펴지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그 기운이 흩어질 때에는 반드시 격렬해져 나무를 꺾고 집을 뽑아버립니다.
少女風(소녀풍)은 온화하게 흩어지는 바람이고, 颶母風(구모풍)은 격렬하게 흩어지는 폭풍입니다.
周成王(주성왕)이 한순간 잘못된 생각을 품었을 때 큰바람이 불어 벼가 쓰러졌고, 周公(주공)이 여러 해 동안 교화를 베풀자 바다에는 큰 파도가 일지 않았습니다.
자연의 기운이 그렇게 된 까닭 역시 인간의 일과 관계가 있습니다.
이것이 장원급제한 율곡의 답변내용이다.
이건 오늘날 수준에서 보면 거의 말장난 아닌가? 하지만 그 시절의 지배이념인 성리학 또는 道學(도학)의 관점에선 대단히 뛰어난 답변이었다. 그래서 1등을 했을 것이다.
이 시험이 있었던 때는 1564년이었다. 460년 전의 일인데 이 답변을 통해 당시 유교권의 지적 엘리트들이 어떤 공부를 하고 또 생각을 했는지 그리고 벼슬을 받아 백성들을 어떻게 다스렸는가를 간접적으로나마 충분히 엿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도 든다. 오늘날 세상을 설명하는 것은 이른바 “과학”이다.
어떤 대상에 대해 검증 가능한 假說(가설)과 예측의 형태로 지식을 구축하고 조직하는 체계로서의 과학 말이다.
물리학, 화학, 생물학, 지리학, 지질학, 기상학, 해양학, 의학 등등 실로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있으며 이로서 우리는 이 세계를 이해하고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앞으로 다시 5백년이 지나면 지금의 과학 또한 앞서 이율곡의 道學(도학)에 기초한 답변처럼 우습고 엉뚱한 답변이 되는 건 아닐까 하는 공상이다.
가령 이런 식이다.
5백년 전의 사람들은 이른바 원자 단위 이하의 세계에선 양자역학, 원자 단위 이상의 세계에선 고전역학을 적용했다고 해, 당시로선 양자역학과 고전역학이 충돌했던 거지, 하면서 오늘날 21세기의 力學(역학)을 우스개로 치부할 수도 있을 거란 얘기이다.
오늘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은 오늘에 와서 허점 투성이인 성리학과 도학이 사실상 조선 왕조 끝날 때까지 사실상의 주류 교리였다는 점이다. 과학은 근대화와 함께 우리에게로 들어왔으니 20세기의 일이었다.
그런데 그렇다면 말이다, 사주명리학에서 古典(고전)이자 이론의 근간을 이루는 “자평진전”이라든가 “적천수천미”, 그리고 “난강망”과 같은 대표적인 이론서들 또한 중국이 여전히 道學(도학)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있던 16세기, 도학으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으면서 형성되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그런 책들에 근거해서 사람의 운명을 설명하고 예측해보는 것이 과연 얼마나 타당할 것인지 나 호호당으로선 지극히 의문스럽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나 호호당은 운명학을 연구하는 사람이지만 옛날 중국에서 만들어진 사주명리학에 대해 지극히 비판적인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새로운 동영상 채널 <호호당의 명리학 이야기 (자연순환운명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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