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문화라는 것, 그리고 그 상실에 대하여  _  2023.9.8
새 블로그 주소는 hohodang.tistory.com)   티스토리 블로그엔 자연순환운명학에 대한 더 많은 그림과 동영상 강좌가 계속 올라가고 있다는 점도 알려드린다.


유튜브를 통해 실로 많은 것을 접하는 세상이다. 이에 어쩌다가 일본의 옛 연극 스타일의 예능인 노, 한자로는 能(능)이란 것과 만나게 되고 지금은 무척이나 재미가 들어서 유튜브를 통해 백 편 이상 감상하고 또 즐기고 있다. 언젠가 일본의 교토나 도쿄에 가서 직접 노가쿠(능악, 能樂) 공연을 직접 관람해봐야지 하는 마음도 있다.

그러고 보니 나 호호당은 우리 國樂(국악)도 좋아하고 중국 음악이나 京劇(경극)같은 것도 좋아하며 이번에 일본의 옛 음악과 연극까지 즐기게 되었으니 동양 세 나라의 음악과 예술을 두루 맛을 본 셈이다.  

며칠 전 유튜브로 노 한편을 보는 데 제목이 邯郸(한단)이었다. “한단의 꿈”이란 故事(고사)에서의 邯郸(한단)인가? 싶었는데 역시 그랬다.  꿈속에서 갖은 부귀영화를 누리다가 깨어보니 초라한 현실, 하지만 그로서 헛된 욕망을 깨닫게 된다는 스토리이다.

독자님들, 九雲夢(구운몽)이란 소설을 아실 것이다. 조선 시대 최고의 소설로서 서포 김만중의 작품이다. 내용인 즉 한 수도승이 수행 중에 잠깐 잠이 들었다. 꿈속에서 수도승은 글 읽는 선비로서 과거에 급제하고 승승장구 출세하여 벼슬은 재상에 이르며 절세미녀 여덟을 죄다 처첩으로 거느린다. 자녀들 또한 엄청나게 잘 풀려갔다.

이처럼 세속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즐거움과 영화를 누리다가 어느 순간 잠에서 깨어났더니 초라한 수도승의 신분임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이를 계기로 더욱 수도에 정진해서 큰 스님이 된다는 내용이다.

사실 큰 스님이 되고 도를 깨우치는 것은 이 소설에서 전혀 중요하지 않다, 꿈속에서 주인공의 신나고 화려한 성공 스토리가 핵심이다.

구운몽, 정말 뛰어난 작품이지만 나름 아이디어를 가져와 만든 것이다. 이 소설의 原型(원형)은 중국 당나라 시절에 만들어진 枕中記(침중기)란 단편소설이다. 이 소설에서 나온 사자성어가 ‘한단지몽’이다.

과거시험에서 낙방한 젊은 선비가 귀향길에 한단(邯鄲)이란 곳을 지나가던 중 어느 여관에 묵게 되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신선술을 익힌 나이 많은 道士(도사)를 만났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중 그 도사에게 자신의 한심한 처지에 대해 신세타령을 했다. 그러자 도사는 도자기로 된 베개를 주면서 한 번 베고 자보라, 꿈이 이루어질 것이라 했다.

이에 선비는 베개를 베고 잠이 들었는데 꿈속에서 50년 세월을 보낸다. 그냥 지내는 게 아니라 아름다운 아내도 얻고 과거에도 장원급제한 뒤 승승장구 엄청나게 출세도 하고 도중에 시기질투를 받아 힘든 경지도 있었으나 끝내 황제의 총애를 받았으며 자식들도 죄다 출세하고 장가도 잘 갔으며 이렇게 80세까지 살다 죽었는데 바로 그 순간 홀연히 꿈에서 깨어났다.

선비가 놀라서 주위를 돌아보니 베개를 준 도사가 옆자리에 앉아 있었고 주막 주인이 찌는 기장밥도 아직 다 익지 않은  상태였다. 꿈속의 50년이 실은 30분 정도의 단잠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에 젊은 선비는 이 모든 것이 자신의 헛된 욕망을 일깨워주기 위한 도사의 배려임을 깨닫고 크게 절하고는 고향으로 돌아갔다는 내용이다.

이 “침중기”란 짧은 소설은 8세기 경 중국에서 만들어졌는데 워낙 모티프가 좋아서 일종의 古典(고전)이 되어 그 이후 중국의 여러 소설, 우리나라의 구운몽이나 일본 등지의 소설이나 설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버전이 만들어지고 전해져오고 있다. 나아가서 오늘날 우리가 접하는 흥미로운 환타지 드라마 속에도 깊숙하게 스며들어 있다.

앞의 얘기로 돌아가서 그 노의 제목이 한단이고 그 내용이 ‘침중기’란 것을 알게 되자 금방 친숙해져서 즐겁게 감상할 수 있었다. 내 경우 일본의 가부키보다 노(能))를 더 좋아하는 이유 역시 노의 경우 古典(고전)적인 배경을 더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물론 노(能)가 중국 고전에서만 소재를 가져오고 있지는 않다. 오히려 일본 고유의 문화와 정서, 그리고 그들의 古典(고전)에 해당되는  겐지 모노가타리(源氏物語, 원씨물어)라든가 헤이케 모노가타리(平家物語, 평가물어) 속에서 가져온 얘기들이 더 많다. 아울러 노(能)는 일본 특유의 美意識(미의식)이 잘 반영되고 있어 흥미롭다.

판소리의 경우 한 명의 소리꾼이 한 명의 鼓手(고수) 즉 북치는 사람의 장단에 맞추어 소리도 하고 대사도 하면서 일종의 연기를 하면서 진행한다. 거기에 관객들이 얼쑤, 좋다, 등의 추임새를 넣어가며 흥을 살리는 행위예술이다.

이에 비해 노(能)는 훨씬 규모가 있다. 악기만 해도 피리 하나에 작은 북, 중간 북, 큰 북, 이렇게 4개나 되며 그들 또한 연주만이 아니라 노래도 한다. 여기에 더불어 일종의 코러스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제창을 하기도 하며 주연 배우 역시 가면을 쓴 사람과 그 상대역을 하는 이가 있어 연기와 춤, 노래를 한다.

판소리의 경우 춘향가, 흥보가, 심청가, 적벽가, 수궁가, 이렇게 사실상 다섯 마당만 남았지만 노(能)의 경우 오늘날에도 여전히 무대에 오르는 레퍼토리가 몇 백에 달한다. 일본에서 노를 비롯한 전통 예능은 여전히 살아있고 활발하다. 그러니 부럽다.  

우리의 경우 전통문화가 단절되어가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 하나로서 한글 전용이 있다. 예로서 판소리 다섯 마당만 해도 그 노랫말과 대사 내용이 대부분 한자어로 되어 있어 사람들이 잘 이해하거나 받아들이기 어렵다. 간단히 말해서 무슨 말인지 모른다.

소리꾼이 제아무리 소리를 잘 내고 기교가 좋다 해도 거기에 담긴 가사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으면 깊은 흥취를 느낄 수가 없다, 그러니 찾지 않게 되고 오늘날에 이르러 국가보조금으로 연명되는 보호 문화재가 되고 있다. 이미 죽은 것과 다름이 없다.  

반대로 일본의 경우 저들의 어휘에 부족한 점이 있다 보니 여전히 한자어를 많이 쓰고 있어서 古典(고전)의 맥락이 우리보다는 쉽게 전달이 되고 그 결과 이어질 수 있는 여건이 되고 있다.

나 호호당은 일본이란 나라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그 가장 큰 까닭은 저들이 스스로의 전통과 문화를 잘 계승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우리는 6.25 이후 사실상 새롭게 만들어진 나라란 점에서 전통과 단절된 면이 크고 중국 또한 공산주의와 문혁을 통해 과거 문화와의 단절이 엄청 나다. 하지만 일본은 고스란히 남아있다.

이 대목에서 전통 문화란 말이 실질적으로 지칭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얘기할 때가 되었다. 우리들이 흔히 말하는 전통문화란 것은 그 사회 속에 이어져오는 神聖(신성)의 줄기이다.

모든 전통예술은 그 본질에 있어 초월적인 존재 또는 神靈(신령)에 대한 축원이나 기도, 解寃(해원) 등을 그 본래의 목적으로 한다. 춤도 그러하고 노래도 그래하며 노래가 발전된 詩(시)가 그렇다. 음악 역시 박자를 중심으로 하는 신령한 존재의 리듬을 본뜨고 있다.

최근 나 호호당이 즐기게 된 일본의 노(能) 역시 다양한 스타일과 스토리를 갖고 있지만 그 출발은 원래 신에게 비는 기도와 축원의 음악이요 노래이자 춤에서 출발했다는 점이다. 노에서 주역은 가면을 쓰고 연기를 한다. 가면을 쓰는 순간 그 주연은 사람이 아니라 神(신)이 되어 말하고 노래하고 춤추고 있는 것이다.

가면을 쓴 이가 주연으로 등장하는 일본의 예능이 노(能)이지만 그게 일본에만 있는 게 아니다. 우리의 경우에도 각종 탈춤, 즉 처용무라든가 봉산탈춤, 강령탈춤, 하회별신굿탈놀이 등등 다양한 탈춤이 있다. 타령과 장단, 이는 신령의 리듬이며 그에 맞추어 노래하고 축도하고 해원하고 또 농담도 해가며 사람들을 위로해주는 우리의 전통 예능이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의 경우 모든 전통놀이, 실은 神聖(신성)의 영역이자 일반인들에게 가장 밀접하게 닿아있던 것이 다 떨어져 나가고 말았다. 그저 국가보조를 통해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딱하다!

그 자리를 고등종교라고 하는 불교와 기독교 등이 차지했으나 그 역시  合理(합리)라는 이름의 근대성에 밀려나고 과학의 시대가 되었다. 그러니 우리 사회, 과연 우리들은 어디에서 삶의 暴壓(폭압)으로부터 위안을 찾을 수 있을까, 그저 살벌한 대한민국이 되고 말았으니 말이다.

그런 면에서 여전히 神聖(신성)의 문화를 보존하고 이어가고 있는 일본이 나 호호당으로선 그저 부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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