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국이 여간 殊常(수상)하지 않아서  _  2022.9.19
새 블로그 주소는 hohodang.tistory.com)   티스토리 블로그엔 자연순환운명학에 대한 더 많은 그림과 동영상 강좌가 계속 올라가고 있다는 점도 알려드린다.

나이가 들면서 알게 되었다, 나 호호당은 보물을 가졌다는 것을. 그림을 재미나게 그릴 수 있으니 지루하거나 무료할 틈이 없다. 그러니 이거야말로 보물 중의 보물이 아니겠는가. 죽기 전까지 시력만 잃지 않으면 된다. 손이야 약간 떨어도 별 관계가 없다.

1년 내내 매일 그림을 그리진 않는다, 바쁜 나날이 이어지거나 그게 아니어도 어쩌다가 한 번 손을 놓게 되면 다시 감각을 되찾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하다 보면 감각을 되살려낼 수 있다.  

수채화는 감각의 영역이다. 감흥이 먼저 일어야지만 그릴 수가 있다, 칠하는 기술 역시 감각이다. 그렇기에 많은 연습이 있어야 한다.

약간 뜬금없지만 수채화의 칠하는 기법에 대해 얘기해본다.  

먼저 종이의 상태에 네 가지가 있다. 마른 종이, 거의 마른 종이, 축축한 종이, 물이 흥건한 종이가 그것이다. 여기에 붓이 머금은 물감의 농도에 다섯 가지가 있다. 아주 진한 농도, 진한 농도, 보통의 농도, 연한 농도, 아메리카노 커피와 같이 희석된 농도가 있다.

붓질이란 종이 위에 물감을 올려놓는 것인데 앞의 경우를 조합하면 붓질의 방법이 스무 가지나 된다. 내 생각에 이게 수채화의 모든 테크닉이 아닌가 싶다. 물론 그리고 있을 때는 주제와 대상에 집중하느라 어떤 붓질을 택할 것인지는 거의 의식하지 않는다. 그냥 상황에 따라 저절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기에 경험과 연습이 필요한 것이니 그게 바로 즐거움이다.

오늘 월요일 작업실에 나가지 않았다. 주말 강의로 피곤이 누적되어 있으니  월요일은 가급적 쉰다. 그런데 그림을 그리고 나면 역시 피곤해진다, 다만  기분 좋은 피로감이다.

며칠 사이 몇 권의 책을 읽었다. 킬링타임 용으로 일본 작가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 3권을 읽었다. 소설 “화차”의 작가라면 하면 알 수도 있을 것 같다. 정말이지 이야기를 어쩌면 그렇게 잘 만들어내는지 읽을 때마다 감탄하게 된다. 짭짤한 소설도 있고 다 읽고 나서 좀 싱거운데? 하다가 나중에 앗! 하고 뒤통수를 때리는 작품도 있으며 가슴 훈훈한 이야기, 너무나도 어이없는 기상천외한 이야기 등등 작가의 상상력이 그저 놀랍다.

1960년 12월 23일생이니 庚子(경자)년 戊子(무자)월 乙酉(을유)일이다. 생시를 모르지만 운세 흐름은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다.

1995 乙亥(을해)년이 立秋(입추)이다. 1987년에 데뷔했으니 夏至(하지)의 운이었다. 그 무렵에 작가의 길을 시작했다면 볼 것도 없이 대성할 작가이다. 그리고 대성공을 했다. (하지의 운에 자신의 길을 걷기 시작하면 무조건 성공한다.)

성격적으로 무척이나 내성적이고 조용한 사람일 터인데 속으론 별의 별 상상과 공상을 다 하는 사람일 것이다. 그러니 저 많은 작품들을 계속해서 실망시키지 않고 써내고 있지 않은가.

그러는 사이 아주 묵직한 책도 한 권 읽었다. 국내 번역본 제목은 “강철왕국 프로이센”. 무려 1,053 페이지에 달하는 하드카버 책이다. 간단히 말해서 벽돌책이고 1600년부터 1947년까지의 장기에 걸친 프로이센의 역사를 다룬 책이다. 프로이센하면 현대 독일의 모태, 철혈재상 비스마르크의 프로이센 말이다.

책은 재작년에 샀지만 그간 읽지 않았다. 읽으려면 作心(작심)해야 할 것 같아서였다. 이런 종류의 책은 대충 괜찮다 싶으면 일단 사놓는다. 나중에 사볼까 하면 이미 책방에 없다. 보나마나 1판 인쇄로 끝이 날 것이니 그렇다. 결국 읽고 싶으면 국립도서관에서 검색해서 대여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게 된다.

지은이는 영국의 역사학자, 나 호호당은 영국 역사학자들을 꽤나 좋아한다, 크리스토퍼 클라크란 양반이다.  

호주 출신이고 영국 캠브리지 대학에서 학위를 받은 뒤 줄곧 동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 중인 역사학자이다. 1960년 3월 14일생이다. 庚子(경자)년 己卯(기묘)월 辛丑(신축)일생이다. 남반구인 호주에서 태어났으니 초가을 생이 된다. 따라서 2011년 辛卯(신묘)년을 입추로 봐야 할 것이다.

이 양반은 바로 앞의 책을 통해 세간의 주목을 받았는데 책이 나온 것은 2006년이었고 2015년에 영국과 독일의 우호증진에 기여한 공로로 기사 작위를 받았으니 그렇다.  

이번 책은 진짜 벽돌이다. 5층 이상의 아파트에서 떨어뜨리면 지나가는 행인이 맞아서 죽을 수도 있을 정도의 무거운 책이다. 그 바람에 며칠 동안 프로이센이란 벽돌에 깔려 허우적거려야 했다. 하지만 독일의 운세를 살핌에 있어서도 꽤나 도움이 되는 책이었다.

나 호호당은 지구상의 열 몇 개 정도의 주요한 나라들 운세를 알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알아내었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저와 같은 역사서들을 무수히 읽어가며 가설을 세우고 검증해보는 작업을 했기 때문이다. 나라별 국운의 흐름, 즉 360년 운세 흐름과 60년 운세가 그것이다. 역사서의 경우 영어판 책과 국내 번역본 합쳐서 족히 천 권은 읽었다.

같은 주제일지라도 다양한 저자들의 역사서들을 접하다 보면 얻는 통찰이 하나 있다. 책을 읽어가다 보면 으레 저자의 주장이나 견해에 동조하게 되기 쉬운데 그렇지 않게 된다는 점이다. 같은 주제를 놓고도 저자마다 관점이 다르고 가치관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면 나중엔 아, 이 저자는 이렇게 보고 있구나! 정도로 받아들인다. 이거야말로 진짜이고 진실이구나, 하는 생각은 아예 갖지 않는다. 진실은 우리의 손닿는 곳 저 너머에 있다.

그러다 보니 일상 생활에서도 그렇다. 만나는 사람들의 생각과 주장, 어떤 일에 대해 나름 팩트라고 강변하는 사람들의 말 역시 그저 접수해둔다. 함부로 반론을 제기하는 일은 없다, 그럴 이유가 없으니. 그저 이 사람은 이런 말을 하고 이렇게 보는구나 정도로 받아들인다.  

의심이 많아서가 아니다. 나 호호당은 내가 직접 겪은 일도 시간이 지나면 그게 정말 그때 그랬었나? 하면서 잘 받아들이지 않는다. 사람은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다르게 보고 느낄 수 있는 존재란 생각을 한다.

아무튼 잠자리에선 미야베의 소설을 읽고 여느 시간엔 벽돌을 읽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소개한 두 사람 모두 1960년생이다. 나름 묘하다. 한 사람은 뛰어난 이야기꾼이고 한 사람은 엄청 치밀한 역사학자이다.

나 호호당은 영국 사회를 꽤나 높이 사준다. 지금부터 그 까닭에 대해 짧게 얘기해본다.  

방금 소개한 클라크란 학자를 예로 들어본다. 저 친구는 운세 바닥에 영국의 전통 명문인 캠브리지 대학 인문학부에 들어와 학위를 마쳤다. 역사학, 우리나라에선 사실 그다지 쓸모없는 분야이다. 요즘 와서 누가 감히 역사학과를 택하겠는가? 성적이 딸리면 모를까, 졸업하면 중소기업 또는 비정규직, 전공을 살려본들 지방대학의 시간 강사가 고작이다.

저 양반 역시 운세가 바닥이니까 출세에 관심이 없고 종교나 마찬가지인 인문학 중의 역사학을 택했을 것이다. 물론 캠브리지에서 교수의 길을 간다고 해도 급여는 겨우 밥 먹고 살 정도였을 것이다. 하지만 마음만 먹으면 전공을 살려 그 계통에서 계속 일을 할 수가 있다는 점이다. 그 바람에 영국은 뛰어난 역사학자들을 많이 배출해내고 있다. 바로 그런 점 때문에 나 호호당은 영국을 높게 사준다.

영국은 머리가 좋지만 운세 바닥인 사람들이 저런 학문의 길을 간다. 우리는 머리가 좋아도 운세 바닥이면 아예 발붙일 데가 없다. 바로 이 차이가 나로 하여금 영국을 부럽게 만든다.

영국, 오늘날 국력으로 치면 그저 그런 강국에 속한다. 최근엔 물가가 올라서 끼니를 굶는 사람도 있을 정도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와 비교해볼 때 영국은 내게 있어 여전히 ‘넘사벽’의 선진국이란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바로 저런 차이 때문이다.

이에 문득 스쳐가는 불길한 생각이 하나 있다.

동아시아, 그러니까 우리와 일본, 중국을 생각해보면 드는 생각이다. 일본 한 때 엄청 잘 나가다가 오늘날 저 모양이 되었다. 중국? G2 운운하지만 독재 공산당 치하에서 내부 모순이 나날이 심화되고 있으며 조만간 무너질 것이라 본다. 그리고 우리나라, 엄청난 탄력을 발휘해서 여기까지 왔다. 반도체와 자동차, 조선 등등 적지 않은 분야에서 첨단에 가깝지만 원천기술이 탁월하진 않다. 정치적으론 그저 짜장면과 짬뽕, 진영으로 나뉜 채 利權(이권) 다툼에 여념이 없다.

이러다가 결국 동아시아의 세 나라는 창의성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와 스스로의 한계에 갇혀 결국 뒤처지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길한 생각이 든다. 물론 이건 지나친 杞憂(기우)야, 하면서 애써 지워버리곤 한다.

글로벌 경제가 온통 난리통이다, 그저 미국 연준의 무슨 스텝(step)인가 하는 소리만 들려온다, 게다가 코로나가 가실 때가 되자 이번엔 기상이변으로 전 세계가 또 난리. 오늘은 굳이 그런 얘기를 하고 싶지 않아서 이런 글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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