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원리와 자아의 원리, 그리고 인류의 원리  _  2022.6.13
새 블로그 주소는 hohodang.tistory.com)   티스토리 블로그엔 자연순환운명학에 대한 더 많은 그림과 동영상 강좌가 계속 올라가고 있다는 점도 알려드린다.

(먼저 알려드릴 것은 글 말미에 증시 폭락과 관련해서 간단한 글을 붙였다는 점이다.) 
 
보통의 원리 또는 평범성의 원리란 게 있다. 영어론 Mediocrity Principle 이다.

이 게 무슨 말이지? 하면 mediocre 란 영어 형용사가 “그저 그렇다, 보통이다”, 대충 이런 뜻이기에 말 그대로 ‘보통’이란 뜻이다.

길을 가다가 누군가가 내 어깨를 스쳤다고 하자, 아마도 그 사람은 그저 그런 보통의 사람일 확률이 높다. 그냥 시민. 이어서 당신이 누구이며 나는 누구인가 하면 그저 보통의 그저 그런 평범한 사람일 것이다. 글을 쓰는 호호당이나 글을 읽는 독자나 보통 사람이란 얘기이다.

좀 더 달리 얘기하면 이렇다. 가령 100 명의 사람이 있고 그 중에서 1명만 무작위로 선발된다고 하자. 그 결과 뽑힌 사람은 보통의 사람일 것이다.

그런데 이 보통의 원리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왜 그럴까? 하면 대다수 사람의 감정에 거슬리기 때문이다.

아니, 난 그래도 좀 뭔 가 특별한 데가 있는데 그런 나를 보통의 그저 그런 사람으로 취급하다니, 이게 은근히 불쾌하네, 싶은 것이다.

스스로를 보통이 아니라 특별하다고 여기는 것은 내가 나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그 사람의 主觀(주관)이다. 세상에 나는 하나밖에 없잖아, 그런데 그런 나를 두고 그저 그렇다니, 보통이라니 에이 기분 나빠, 하는 것이다. 그래서 보통 원리는 대개의 경우 들어도 안 들은 것으로 치부하게 된다. 설령 맞는 얘기라 해도 듣기가 싫다.

異性(이성)을 유혹할 때 쓸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말은 아주 간단하다. “너는 정말 특별해, 다른 사람들은 뭐라 여길지 몰라도 난 그래, 정말이야!”  

나를 특별하게 대접해주길 바라는 감정, 이거야말로 사람이 가진 최대의 약점이기도 하다. 그러니 그 약점을 찌르면 상대를 공략할 수 있고 어필할 수 있다.

묘한 것은 나 호호당은 젊은 시절 앞서의 이런 생각, 사람은 자신을 중요하거나 특별하다고 여기는데 이를 “自我(자아)의 원리”라고 이름을 붙인 적도 있다. 영어론 "The Principle of Self". 그런 뒤 한참 지나서 “보통 원리”란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기분이 묘했다. 사실 내가 “자아의 원리”란 것을 생각했을 때 “보통의 원리”란 것도 있을 거란 예측을 이미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키득거렸다. 내 그럴 줄 알았어! 하면서.

돌이켜보니 나 호호당은 꽤나 영리한 구석이 있었던 것 같다. 두 원리를 적절히 사용하고 적용해온 것 같으니 말이다.

어떤 일을 시도하거나 기대했을 때 실패로 끝나면 뭐 그럴 수 있지, 하고 받아들였다. 보통의 사람이 보통의 행동이나 시도를 하면 짓을 그 결과 또한 되거나 되지 않거나 확률은 반반, 즉 보통일 것이니 말이다.

그런데 두 원리를 모두 사용한 적도 있다. 기묘한 얘기지만 사실이다.

2000년대 초반 한창 궁핍했던 시절에 이런 생각을 했다. 세상을 보면 성공하는 이는 적고 실패하는 이가 많다. 그러니 내가 실패한 인생으로 마무리한다고 해서 전혀 이상할 것 없다는 생각이었다. 이게 바로 “보통의 원리”를 사용하고 있는 경우이다.  

그런데 당시 나는 한 발 더 나아갔다. 실패가 보통이고 정상이라면 난 앞으로 더 이상 성공하기 위한 노력을 주체적으로 거부하고 거절하겠어, 난 그냥 의도적으로 실패해버릴 거야, 그러면 이건 좀 뭔가 비범하잖아? 주체적 실패 또는 실패의 자유, 난 이 길을 선택하겠어, 하고 억지를 부렸다. 이건 “자아의 원리”를 나름 묘하게 사용했던 경우이다.

궁핍했던 40대 시절 나는 이왕 망했으니 하고픈 일과 연구나 실컷 해보자, 그래도 가장인 까닭에 밥만 근근이 먹고 살자는 식으로 정리를 했다. 주체적 실패의 삶을 선택한 셈이다. “난 그래도 특별하니까” 하면서 “자아의 원리”를 택했다.

연구는 첫째 지금 늘 글로 표현하고 있는 자연순환운명학의 원리와 이치를 제대로 밝혀보자는 시도였고 둘째로는 평소 사색해오던 ‘언어의 연구’였다.

아울러 해보고 싶던 일, 중국 도교 경전의 핵심이자 엑기스이지만 여태껏 번역된 적이 없는 운급칠첨(雲笈七籤)이란 방대한 분량을 지닌 책의 번역에 착수했다. 다 번역했다면 200자 원고지로 아마도 20만 매 정도는 되었을 책이다. (하지만 1/3 가량 하다가 그만 바빠지면서 그만 두고 말았다. 하지만 정말이지 참으로 흥미진진한 책이다.)

이런 명분도 달았다. 아, 하늘이 나를 망하게 하고 궁핍하게 한 것은 모두 나로 하여금 이 좋은 책 그리고 운명의 숨겨진 이치, 언어 생성의 원리를  알아내도록 하기 위함이구나, 그러니 내 기꺼이 天命(천명)을 따르리라! (지금 생각해도 나름 즐거운 얘기이긴 하다.)

이제 마지막으로 인류의 원리란 것을 소개해본다. Anthropic principle.

이 또한 좀 웃긴다. 광대한 우주를 살펴보니 생명이란 것의 존재 확률이 희박하구나, 그런데 어떻게 해서 우리 인간이라고 하는 지적생명체가 지구에 존재하는 것이지? 하는 의문에 대한 답이다.

그런데 그 답이란 것이 좀 웃긴다. 그건 말이야, 지적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춘 우주에서만 그것을 관측할 지적 생명체가 탄생할 수 있잖아, 그러니 우리에게 관측되는 우주는 반드시 지적 생명체가 탄생할 만한 조건을 갖추고 있는 게 아니겠어! 하는 얘기이다.

네가 존재한다는 것은 이미 그럴 만한 세상이 존재하니까 그런 거야, 하는 답이다.

오래 전에 교양과학서적을 읽다가 접한 얘기인데 처음엔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거 참, 말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네, 했다.

그런데 재미난 것은 이 말은 고타마 붓다가 얘기한 緣起(연기)의 주장과 사실 동일한 맥락이란 사실이다.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나기 때문에 저것이 일어난다.”는 저 말.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았다고 하는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此有故彼有,此起故彼起” (차유고피유, 차기고피기). 아함경 속의 말이고 당나라 현장법사가 옮겨놓은 말이다.  

일체가 서로 의존하고 관계함으로써 생겨나고 사라진다는 얘기이니 이를 조금 바꾸어서 “내가 있으니 우주가 있다,”로 하면 인류의 원리”가 된다.

나라는 이 물건은 네가 있기에 가능하고 네가 있기에 내가 있다, 라는 말도 되니 사실 자아의 원리란 것이 성립하려면 他者(타자)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에 세월의 흐름과 함께 내 속에 있던 생각, “자아의 원리”는 서서히 옅어져갔다.

더 세월이 흘러 오늘에 이르러선 내가 없어져도 가령 죽어서 없어지든 또는 그냥 사라지든 별 상관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다른 사람이 있으면 그게 바로 나, 즉 나의 自我(자아)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결론을 얻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나 호호당이 사라지면 거의 똑 같은 호호당-이름이야 다르겠지만-이 다시 태어날 것이고 어쩌면 태어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마도 이미 살았다가 죽었을 것 같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는 윤회설에 관한 것이 아니라 확률적으로 그럴 거란 얘기이다. 그러니 오해하지 마시길.)

그리고 이 시각에도 힘들고 고달픈 사람 많을 것이다. 그러니 그런 분들을 만나게 되면 위로해줄 것이다. 힘들고 고달픈 것 그게 사실 보통이잖아요, 그러니 나만 그렇다고 생각한 나머지 너무 슬퍼하거나 세상을 미워하진 마세요, 그러면 더 힘들어져요, 하고.

이에 생각해본다, 주어진 삶의 시간 동안 남은 일이 무엇일까? 하고 따져보니 그냥 “보통의 삶”을 열심히 살아가면 되겠구나 싶다.

운의 흐름과 순환이란 것 역시 우리가 살아가면서 너무 심심하지 않도록 위로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오고 그러면 다시 올라가는 놀이기구가 아닌가 한다.  

너무 비가 오질 않아서 풀과 나무들이 타들어간다. 비야, ‘님’이라 불러줄게, 비님아 제발 좀 내려다오.

추가;

이번 글은 어제 일요일 밤에 썼는데 오늘 월요일 장세가 폭락한 바람에 걱정이 많으실 것 같다. 제자들로부터 그리고 아는 이들로부터 전화나 카톡을 통해 걱정 어린 문의가 많았다. 그래서 조금만 얘기해본다.

나 호호당 역시 종합지수 2,500 선이면 바닥이 나올 것으로 보고 있었는데 글로벌 악재가 더욱 가중되면서 추가조정이 나왔다.  

내 경우 목요일 장세가 이상해서 들고 있던 주식의 비중을 원금의 55%에서 35%로 상당히 줄였다. 그 날은 강한 반등이 나와야만 되는 날이었다. 그런데 거꾸로 지수가 20일 이동평균선 아래로 밀리는 것을 보고 아, 이건 아닌데 싶었다. 경보 발동! 그러더니 금요일 역시 추가하락을 하는 것을 보고 아이쿠, 이건 아니다, 월요일 장세는 십중팔구 갭으로 폭락하리란 예상이 섰는데 역시 와장창 깨졌다.

문의나 질문은 대부분 지금이라도 팔아야 되나요? 하는 것이다. 이에 지금 損切(손절)하려면 나중에 저점 매수할 기량이 있어야 하는데 ‘꾼’이 아닌 이상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견디는 것이 더 좋다는 답을 했다.

이번 하락의 경우 심할 경우 하단이 종합지수 기준으로 2350 포인트선까지도 예상이 된다. 그 지수대가 재작년 11월 초순 조정을 마치고 오르기 시작한 자리이기에 지지선이 형성되어 있는 자리란 점 알려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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