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은 좌절로서 마무리가 된다.  _  202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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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절 나폴레옹은 초인처럼 보였으며 거의 신과도 같았다.”

최근에 읽은 책, 영국의 D. H. 로렌스가 쓴 “유럽사 이야기” 중에서 만난 구절이다.

잠깐 작가의 말을 통해 그 맥락을 알아보면 이렇다. “1807년 6월 프로이센군과 러시아군은 프리틀란트에서 나폴레옹에게 처참한 패배를 당했다. 두 나라는 틸지트 강화조약을 받아들였는데, 이것은 나폴레옹의 군사적 업적에서 정점에 속하는 사건이었다.”

초인처럼 보이고 거의 신과도 같다는 저 표현, 전 유럽의 강대국들을 무려 10년 이상에 걸쳐 연전연승, 붙는 족족 판판이 모조리 부수어놓은 전쟁의 천재 나폴레옹에 대한 당대 유럽인들의 인상일 것이다. 나폴레옹은 무조건 이기고 늘 이기며 어쨌거나 이겨! 하는 생각.

하지만 운명이란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나 호호당이 그 시절에 만일 살고 있었다면 “아, 이제 나폴레옹의 시대가 저물 때가 가까웠구나!” 하는 혼잣말을 읊조렸을 것이다.

사물이 極(극)에 달하면 돌아온다, 사람이 초인처럼 보이고 신처럼 느껴지면 그건 극점을 지나쳤다는 얘기가 된다.

1769년 8월 15일 오전 11시에 태어난 나폴레옹이다.

己丑(기축)년 壬申(임신)월 甲午(갑오)일 己巳(기사) 또는 庚午(경오)시가 된다. 태어난 해의 地支(지지)에 丑土(축토)가 있어 한 점 맑은 기운이 서렸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조열해서 甲木(갑목) 일주가 虛(허)하니 60년 순환에 있어 입추는 甲寅(갑인)년이 되고 입춘 바닥은 甲申(갑신)년이 된다.

이를 토대로 살펴보면 나폴레옹은 입춘 바닥(1764년)으로부터 5년 뒤에 태어났음을 알 수 있다. 간단히 말해서 재운의 바닥에 태어났으니 타고 나길 거의 餓鬼(아귀), 즉 엄청난 욕망을 가진 자임을 말해준다.

욕망이 커야 성취도 크다, 하지만 반대로 볼 것 같으면 채워도 끝내 채워지지 않는 욕망에 시달리며 살아야 한다. 이런 사람은 남 보기에 어떨지 몰라도 본인은 사는 게 그저 고달프다, 늘 허기가 지니.

1794년은 甲寅(갑인)년, 입추의 운, 운기가 최고조에 달했다. 이 무렵 그는 장군으로 승진했다. 프랑스 식민지 코르시카 출신의 ‘듣보잡’ 사내가 프랑스 혁명이란 풍운을 타고 급기야 별을 단 것이다.

그리고 1796년 丙辰(병진)년, 한 해로 치면 8월 20일 경 벼가 꽃을 피운 다음 즉시 쌀알을 만들어 매다는 시점인 處暑(처서)의 때에 이탈리아 원정군 사령관이 되었다.

나폴레옹은 모험가이자 야심가였고 사병들은 허기가 져 있었다. 이에 그들은 배고픈 야수가 되어 이탈리아로 쳐들어가서 오스트리아 제국의 정예부대를 사정없이 쳐부수고 무찔렀다. 나폴레옹 신화의 시작이다.

1796년 4월에 이탈리아 원정이 시작되었으니 그로부터 15년이 한 철이 될 것이다. 60년 순환을 한 해로 볼 것 같으면 15년은 그것의 1/4, 즉 한 계절이 되니 그렇다. (누구나 60년 순환에 있어 15년, 한 계절 동안 빛난다. 다만 그릇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1796년 4월부터 1811년 3월까지의 15년이 나폴레옹의 시절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1811년 3월경에 어떤 일이 있었고 당시 상황은 어떠했을까?

황제 나폴레옹은 그 한 해전에 본처 조제핀과 이혼하고 오스트리아 제국의 황녀와 결혼했다. 이제 완벽한 신분상승을 한 셈이니 1811년 3월 20일에 아들 즉 나폴레옹 2세를 얻었다. 제국의 황위를 이를 황자가 탄생한 것이다.

그 무렵 나폴레옹은 로마 교황을 유폐해버리고 교황령을 프랑스에 병합시켰으며, 네덜란드와 독일의 함부르크, 이탈리아의 로마 등을 프랑스 제국의 지배하에 두었다. 친형은 스페인의 왕, 동생은 베스트팔렌의 왕을 시켰으니 온 집안이 왕후장상이 되었다. 부하 장수인 뮈라는 나폴리의 왕, 여기에 스위스와 독일의 상당 부분을 라인동맹으로 묶어 프랑스를 지키는 버퍼 존으로 만들었으며 폴란드와 덴마크 등을 사실상 위성국으로 두고 있었다.

그러니 앞서 D. H. 로렌스의 표현처럼 당시 나폴레옹은 초인이나 신과도 같아보였을 것이 당연하다.

1811년이 외견상 절정이었으니 바로 한 해로 치면 11월 20일경에 맞이하는 小雪(소설)의 시기였다. 物極必反(물극필반), 이제 반대의 흐름이 시작되는 때가 온 것이다.

이럴 땐 만일 나폴레옹이 그 무렵쯤에서 자신의 욕심과 타협을 했었다면 그 이후의 역사는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질문이 생긴다. 하지만 이런 의문은 사실 가장 부질없고 어리석은 질문인 것을 나 호호당은 잘 알고 있다.

그쯤에서 멈출 수 있었다면 그건 이미 욕망의 화신 나폴레옹이 아니란 얘기가 되기 때문이다. 나폴레옹이 다른 사람이 될 순 없는 노릇이 아닌가. 그가 중도 혹은 중용을 택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면 거기까지 가지도 못했을 것이란 게 해답이다. 욕망의 화신은 그 멈출 수 없는 욕망이 좌절되어야만 끝을 본다.

1812년 이제 더 이상 눈에 뵈는 것 없이 자만의 극치에 달한 나폴레옹은 러시아가 고분고분하지 않다는 이유로 60만 대군을 휘몰아 대거 출병을 했다. 그 결과 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까지 점령하긴 했으나 결국 기아와 추위에 떨다가 대부분의 병력을 다 잃고 비참하게 꼬리를 내리고 도망쳐 나왔다. 그 이후론 급거 내리막길이었다.

그러고 나서 9년 뒤인 1821년에 대서양의 절해고도에서 세상을 등졌다. 절정기에 얻었던 아들, 장차 프랑스 제국의 황위를 넘겨주기 위해 어렵게 얻었던 아들 역시 고생 고생하다가 11년 뒤인 1832년, 겨우 21세의 나이로 만성 폐렴으로 사망했다.

“불가능이란 오로지 바보들의 사전에서나 찾을 수 있는 단어이다.”라고 했던 나폴레옹이다. 그런 생각과 신념을 가진 사람이 이쯤에서 적당하다 싶은 시점에서 물러설 수 없었던 것이고 끝내 좌절로서 삶을 마무리했으니 적절한 결말이라 하겠다.

장자 소요유 편에 나오는 글귀, 이야기 아침에 생겼다가 저녁에 스러지는 버섯은 그믐과 초하루를 모르고 여치는 봄과 가을을 알지 못한다는 말이 생각난다. 朝菌不知晦朔(조균부지회삭) 蟪蛄不知春秋(혜고부지춘추).

세상일이란 세를 타면 이루어지는 것이고 세가 꺾이면 뿔뿔이 흩어지는 것인데, 15년간 오로지 상승세를 탔던 나폴레옹은 그 뒤의 세월을 알지 못했기에 “불가능이란 바보들의 사전에서나” 운운했던 것이니 그 역시 큰 눈에서 보면 아침버섯이나 풀숲의 여치와 다를 바가 없었다 하겠다.

사람들은 묻고자 찾아온다. 저는 언제쯤이면 풀릴 까요, 필까요? 하고.

그러면 답해준다, 언제부터 언제까지가 당신의 세월이라고, 그러면 반색을 한다. 하지만 토를 달아준다. 그 때가 지나면 그저 잘 마무리하고 몸을 아끼며 살라고. 또는 언제부터 언제까지가 당신의 세월이었으니 이젠 지나갔다고. 그러면 싫은 기색을 보인다. 그러면 웃으며 얘기해준다. 삶은 언제나 고생이고 고통이라고. 그러니 몸과 마음을 아끼면서 살다가라고.

그저 한 때의 호시절이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모든 것은 다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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