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庚子(경자)년 죽이기  _  202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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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立冬(입동)이 지났다. 입동에 대해 정확히 말하면 한 해가 숨을 거두는 때이다.

해가 죽었다고 해서 바로 내다 버리진 못한다. 사람이 숨을 거두면 주변에 訃告(부고)도 보내고 시신을 수습해서 殮(염)을 하고 관에 넣은 상태에서 祭儀(제의)도 치르고 일정 시일이 지나면 산으로 가서 매장을 하거나 또는 화장을 하듯이 나름의 절차가 있다. 이처럼 입동으로서 해가 죽었다고 그냥 버리진 않는다. 나름의 절차가 있으니 3개월의 시일이 소요된다. 이에 그 모든 것이 끝나면 새로운 해의 탄생인 立春(입춘)을 맞이한다.

입동에서부터 다음 해의 시작인 입춘까지 3개월의 기간을 줄여 말하면 묵은해를 폐기하는 과정이라 하겠다. 送舊迎新(송구영신)에서 送舊(송구)의 기간인 것이다.

歷史(역사)란 시간 속에서 일어나고 발생한 사건의 기록이지만 사실 우리 모두는 시간을 주기적으로 또 정기적으로 폐기하면서 살아간다.

이제 지난 일은 다 잊고 새 삶을 시작해보자, 과거는 지워버리고 새롭게 출발해보자, 우리들은 살면서 이런 말을 할 때가 있고 또 해야 한다. 지난 일을 잊는다는 것, 과거를 지운다는 것은 결국 과거의 시간을 廢棄(폐기)한다는 것이다. 시간의 폐기야말로 그 자체로서 淨化(정화)인 까닭이다.

역사는 시간이 이어지는 것이고 연속적임을 말해주고 있지만 앞의 말처럼 사실 우리들은 시간의 연속성을 싫어한다. 시간이 연속된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면 그건 우리가 끊임없이 힘든 현실을 견디며 누추한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얘기가 되는 까닭이다.

현실의 삶은 그 누구에게도 팍팍하고 감내하기 힘들다. 나보다 더 나은 삶을 사는 것 같은 사람이 주변에 있어 그 사람에게 물어보라, 현실의 삶이 즐겁냐고? 돌아오는 답은 결코 그렇지가 않을 것이다. 당신보다 더 나아보이는 그 사람의 삶 역시 힘든 현실 속에서 그리고 그 앞에서 간신히 견디고 버텨나가고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현명해 보이는 사람들은 우리에게 충고해준다, 安分(안분)하고 知足(지족)하라고, 편한 마음으로 자기 분수를 지키고 만족하면서 살라고 말이다. 그런데 글쎄 그게 그럴까? 듣는 순간 그렇구나 싶어도 돌아서면 즉시 당신 속에는 쉽게 떨쳐낼 수 없는 이런저런 근심과 걱정이 옹골지게 자리하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이처럼 우리 모두에게 있어 현실의 삶이란 늘 기대는 배반당하고 소망에 비해 늘 부족하고 아쉬운 것이다. 아울러 예기치 않은 불행이 불쑥 찾아들기도 한다. 그러니 이처럼 힘든 역경으로 얼룩이 진 현실의 시간은 해가 끝날 때마다 폐기하고 지워버려야만 새 꿈과 새 희망을 가져볼 수 있게 된다.

올 해 2020 庚子(경자)년, 코로나19로 인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특히 자영업 하는 분들의 경우 더더욱 살 길이 막혀버렸는가 말이다. 그러니 그들은 어서 이 지긋지긋한 한 해를 보내고 다시 말해서 폐기해버리고 새해에 새 희망을 품어보고 싶은 것이다. 즉 시간의 更新(갱신)이야말로 그 자체로서 새 삶의 출발점이자 새 희망의 토대가 된다는 얘기이다.

새해 첫날이 되었다고 해보자. 엄밀히 얘기하면 전혀 새로울 것이 없다. 어제 저문 해가 한 바퀴 돌아서 또 다시 동녘에서 밝아올 뿐이다. 그냥 시간의 연속일 뿐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왜 우리들은 새해 새 희망을 이야기하는가? 그 이유는 간단하다, 어제까지의 시간은 묵은해, 우리가 폐기해버렸기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과거라고 명확하게 선을 그어버렸기에 우리 모두 새해를 맞이할 수 있음이다.

시간의 갱신, 낡은 해의 폐기를 통한 새해맞이, 사실 이건 근본에 있어 종교적 감성이고 그 자체로서 종교라 할 수 있다. 깔끔한 옷차림을 하려면 일단 먼저 때 묻은 옷을 빨아야 한다. 그런 다음에야 그를 새 옷으로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대선에서 바이든이 승리했고 승리 연설을 했다. 연단에 선 바이든은 새로운 희망을 얘기하고 있었다. 청중들은 환호했고 함성을 지르고 폭죽을 터뜨리고 있었다. 사실 이 역시 우리들 모두의 속에 자리 잡은 종교적 감성의 표출이다.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가 탄생하자 새 대통령은 새 희망을 제시했다. 지지자들은 그 연설을 들으면서 가슴 뭉클해했다. 지켜지지 않을 약속인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그 역시 일종의 사회적 심령대부흥회였다. 낡은 정권의 시대를 폐기하고 새 정권의 시대를 열어젖히는 행사였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대통령은 남루해져간다. 나날이. 그리고 더 세월이 지나고 나면 저번 대통령은 최악이었다는 얘기가 무성해질 것이다. 새 정권을 맞이하고 그를 통해 새 희망을 가져보려면 과거의 정권은 그 자체로서 積幣(적폐)가 되고 舊惡(구악)이 되어야 하는 까닭이다. 특히나 반대 진영이라면 더더욱 천하에 몹쓸 정권이었다고 사정없이 斷罪(단죄)할 것이다.

과거가 구악이고 적폐로 단죄가 되어야만 다시 말해서 시간이 갱신되어야만 카타르시스 즉 淨化(정화)가 가능해지는 까닭이다.

그렇기에 시작할 당시엔 언제나 새 시대를 열어가자고 했던 과거의 모든 정권은 나쁜 정권으로 전락한다. (물론 그 중의 최악은 가장 최근에 폐기된 정권이 된다.) 이 점에 대해 굳이 우매한 대중이라 비판할 것만은 아니다, 실은 그것 자체가 바로 송구영신을 통한 일종의 정화 작업인 것이다.

이처럼 우리 모두 주기적으로 시간을 갱신하고 폐기하는 과정을 통해 현실의 삶, 현실의 팍팍한 무게를 견디어간다.

기독교의 성탄절과 부활절 그리고 주현절이 달리 무엇이겠는가? 과거를 폐기하고 새 시간의 시작, 그로서 새 생명의 시작을 뜻하고 있지 않은가. 물론 묵은 시간의 폐기와 새 시간의 시작에 관한 종교적 감성은 기독교에서만 발견되는 것이 아니다. 동서양의 모든 종교와 종교적 의식 속에서 다양한 형태로 찾아볼 수 있다.

유교의 옛 경전인 禮記(예기)라든가 여타 경전 속에서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특히 大學(대학) 속에 나오는 문구로서 나날이 새로워진다는 뜻의 말,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 역시 마찬가지. 뿐만 아니라 고대의 여러 종교와 신화 속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거창하게 종교로까지 갈 것도 없다. 지금도 그렇지만 상인들 사이에서 연말까지는 밀린 외상과 빚을 다 정리 결제하는 것 역시 새해엔 새롭게 시작한다는 의식이 그 밑에 놓여있다. 연말연시 보신각의 타종 행사 역시 지긋지긋한 묵은해, 흔히 하는 표현으로 다사다난했던 해를 보내고 새롭게 시간을 시작해보겠다는 일종의 半(반)종교적 의식이고 행사인 것이다.

입동이 지났다. 한 해가 이제 사망했고 남은 일은 한 해의 장례식이다. 그리고 동시에 새해에 대한 기대가 벌써 조금씩 생겨나고 있다. 코로나19, 저 몹쓸 놈의 물건도 내년 그래 길게 봐서 내후년이면 없어지겠지? 하는 기대도 생겨난다.

올 한 해야말로 참으로 망쳤다고 여기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새해에 대한 기대를 강하게 가지고자 할 것이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한다고 말들은 하지만 그게 그렇지가 않은 것이다. 새해는 언제나 희망을 가져야 하는 것이고 그래야만 우리 모두 또 다시 새로운 기대를 안고 감당하기 힘든 현실에 힘차게 도전해갈 수 있을 것이다.

나 호호당은 해가 지나면 그를 묵은해라 하지 않는다. 아예 前生(전생)이라 부른다. 그래야만 송두리째 바꿀 수 있으니 말이다. 예전엔 해마다 동지가 되면 동해 낙산사 홍련암에 찾아가서 그 좁은 마당에 낡은 목숨을 내려놓고 다음 날 떠오르는 해와 함께 새 생명을 받아오는 의식을 십년도 넘게 치렀었다. 한때는 제자들도 함께 가기도 했다.

그냥 어영부영 대충 살다가 정작 죽을 날이 왔을 때 후회막급할 수 있으니 해마다 一生(일생)으로 해서 해를 보낼 때마다 반성하고 정리하기로 했고 새해는 새로운 삶으로 살고자 마음을 먹었던 것이니 실은 그게 나 호호당에게 있어 일종의 종교였던 셈이다.

이제 해가 죽었다, 우리 역시 올해의 묵은 삶과 작별을 준비하면서 또 다시 새해의 새 삶을 준비할 때라 하겠다.

강아지들과 아침산책을 나서니 하늘이 그러 푸르다. 구름 한 점 보이지 않는 靑藍(청람)의 하늘이다. 해의 활력을 뜻하는 수증기가 거의 없다는 것이니 이제 해가 죽어가고 있기에 그렇다고 봐도 되리라.

수증기를 앗아가는 차갑고 건조한 북쪽 공기는 따라서 죽음의 상징이기도 하다. 대기가 건조하면 호흡기 질환이 기승을 부린다. 코로나19가 더욱 기승을 부릴 것도 같아서 염려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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