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없는 풍요로움의 사회  _  2019.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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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하면 으레 떠오르는 구절이 있다. “내용 없는 아름다움처럼”으로 시작하는 고 김종삼 시인의 짤막한 시 “북치는 소년”이 그것이다. 워낙 짧은 시이기에 소개해본다.

“북치는 소년”

내용 없는 아름다움처럼

가난한 아이에게 온
서양 나라에서 온
아름다운 크리스마스카드처럼

어린 양들의 등성이에 반짝이는
진눈깨비처럼.

크리스마스가 되면 으레 저 시 구절들이 생각난다. 북치는 소년은 크리스마스 카드 앞면의 삽화이리라. 이런 시는 기본적으로 그 내용을 해석하거나 해설하는 일은 무용한 일이라 여긴다. 해석하자고 할 것 같으면 너무나 다양한 해석이 가능해지니 말이다. 또 한편으론 그냥 직관적으로 어떤 느낌을 받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다.

상상해보면 6.25 전쟁 직후의 빈곤 속에서 시달리는 우리나라의 어느 가난한 아이가 받게 된 크리스마드 카드인 것 같다. 그 카드는 우리와는 비할 바 없이 풍요로운 미국이나 서양의 어느 아이가 학교에서 선생님이 ‘여러분들, 우리 모두 전쟁의 참화를 겪은 코리아라고 하는 가난한 나라의 친구 아이들에게 위문의 카드를 보냅시다’ 해서 보내게 된 수신자 무작위의 크리스마스 카드였던 것 같기도 하다. 실제 그런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1955년생인 나 호호당의 어린 시절엔 앞에서처럼 미국에서 보내온 카드를 본 적이 있다. 눈 덮인 설원 저쪽에 교회가 있고 그 배경엔 반쯤 눈에 덮여있는 전나무 숲이 그려진 아름다운 성탄 카드가 기억난다.

그림의 아랫부분엔 금가루와 은가루가 붙어있는 성탄절 트리가 있는 카드. 그 가루가 혹시 금이나 은이 아닐까 싶어 손톱으로 긁어서 햇빛에 비춰보았던 기억이 있다. (어린 시절엔 빛나고 반짝이는 것은 죄다 한 번쯤 금이나 은이 아닐까 의심 또는 기대했던 나였다. 혹시 금이라면 그야말로 수지맞는 일일 터이니 말이다.)

1960년대 초반 우리에게 있어 미국이란 나라는 지상의 천국이자 풍요의 낙원이었다. 어린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어른들도 그렇게 여겼다. 무한히 풍요로운 나라로서의 미국이었다.

그런 나라의 어린이들은 성탄절이 되면 칠면조 고기와 함께 달고 맛있는 푸딩과 케이크를 배터지도록 먹고 즐긴다는 얘기, 가족들과 함께 트리를 가져다가 방울을 달고 전구도 달고 기타 여러 가지 물건들을 달아놓고 함께 노래를 부르면서 즐긴다는 얘기도 들었다.

부산 용두산 계단 입구에 가면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영어로 된 책이나 잡지를 파는 간판대가 있었다. 호기심에 자주 그곳에 들러 그림이 많은 책이면 사다가 한참동안 구경하기도 했다. 잡지의 갈피를 넘기다 보면 만나게 되는 코카콜라 광고 또한 환상이었다. 검은 액체를 둘러싸고 있는 붉은 색 마크는 ‘영원의 맛’일 것으로 짐작되었기 때문이다.

나라는 가난했지만 나 호호당은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다. 가끔 어머니는 국제시장의 미제 물건을 파는 가게에서 허시라든가 M&M 초콜릿을 사다 주시곤 했는데 엄청나게 비쌌다. 하지만 그야말로 원 세상에 이렇게 기가 막힌 맛이 다 있을까 싶어서 끔찍하게 아껴 먹곤 했다. 감히 씹어 먹질 못했다, 입안에 넣고 혀로 핥아서 먹을 정도였다. 시험 성적이 좋으면 초콜릿이 절로 연상되곤 했다.  

그렇기에 나 호호당은 김종삼 시인의 저 시를 연상할 때마다 시의 내용과는 상관없이 그냥 어떤 아픔과 아련함을 느낀다. 어린 양들의 등성이에 반짝이는 진눈깨비는 내가 보았던 미국 발 크리스마스 카드에 묻어있던 금가루 은가루의 인상과 뒤섞여버린다.

“내용 없는 아름다움”이란 저 도발적인 구절, 말이 될 것도 같고 아닐 것도 같은 저 아리송한 저 구절, 저 구절이야말로 김종삼 시인의 시세계를 열고 들어갈 수 있는 열쇠란 생각을 해본다, 내일이면 저 시를 다시 망각할 것이고 또 내년 크리스마스가 되면 다시 떠올릴 것이다, 저 시를.

이제 분명 우리 대한민국은 특별히 다른 나라의 풍요와 소비 수준을 마냥 부러워하지만은 않게 되었다. 어린 시절 미국에 대한 환상, 무한 풍요의 나라란 환상은 분명 가시고 없다.

그런데 또 다른 이상한 결핍의 감정이 생겨나고 있다. 서로가 서로에게 까칠하고 서로가 서로를 미워하는 우리 대한민국이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가식과 위선으로 도배되어가고 있는 사회가 된 까닭이 아닐까 싶다.

이번 염수정 추기경의 성탄 메시지 중에 나와 생각과 가치관이 다른 자들을 사랑하라는 내용이 있었다. 그 말을 듣고 떠오른 생각, 우리 사회가 참으로 어지간히 서로가 서로를 미워하는 모양이구나 싶다.  

풍요의 세상은 바다 먼 저편에 있었던 우리는 모두 흙수저였는데 저 세월 사이에 금수저가 생겨난 것이 원인이 아닐까 싶다. 예전엔 동화책을 통해 금도끼 쇠도끼 얘기는 들었어도 저런 말 자체가 없었는데 말이다.

2000년대 후반부터 헬 조선이란 용어가 들리더니 문송이란 말도 알게 되었고 그러더니 곧바로 N포 세대란 말도 듣게 되었다. 처음 들었을 땐 나름 제법 심각하게 여겼는데 그 또한 이젠 으레 그러려니 할 뿐이다.

그러다 보니 최근의 젊은 20-30대 세대들은 많이 까칠하다. 게다가 외톨이로 지내는 경우가 일반적인 것 같다. 스스로 고독감을 느낀다거나 외톨이란 사실 자체를 모르는 것 같기도 하다. 대부분 그렇게 지내고 있으니 오히려 정상인 것이다.

우리 사회가 그간에 엄청 발전했고 풍요로워진 것이 사실이지만 이 또한 김종삼 시인의 말을 빌려 표현하자면 ‘내용 없는 풍요로움의 사회’가 된 것은 아닐까 싶다. 포장만 과다한 사회 같은 거 말이다.

슬퍼져서 더 이상 무슨 말을 이어가지 못하겠다. 그만 마친다.

이 글은 간밤 아니 새벽에 쓴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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