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의 해가 지나가는 길에 대한 판타지 (후편)  _  2019.9.5
새 블로그 주소는 hohodang.tistory.com)   티스토리 블로그엔 자연순환운명학에 대한 더 많은 그림과 동영상 강좌가 계속 올라가고 있다는 점도 알려드린다.


원문: 해가 연우에 이르면 고용이라 하고 연석에 이르면 하용이라 한다. 至于淵隅(지우연우) 是謂高舂(시위고용) 至于連石(지우연석) 是謂下舂(시위하용)


해설: 淵隅(연우)란 먼 서쪽 땅에 있는 커다란 연못을 말하는데 나 호호당 생각에 중국 서쪽 신강 위구르 지역에 있는 靑海(청해)성 즉 칭하이 성에 대한 고대인들의 정보가 전해진 게 아닌가 싶다. 고래로 중국인들은 고원 지방의 이민족들과 꾸준히 교류와 교역을 해왔다는 점에서 그렇다. 먼 서쪽의 바다와도 같은 큰 연못이다.

해가 약간 북서쪽으로 가면 산속으로 떨어지니 그 모습을 마치 절구를 찧는 모양, 즉 高舂(고용)이라 하고 있다. 착각하지 말 것은 절구 舂(용)은 밑이 절구 臼(구)자로서 봄 春자와 다르다는 점이다.

해가 서산 너머로 지는 모습을 절구에 해가 들어간다는 식의 표현을 하고 있으니 정말 그 상상력이 멋지지 않은가! 서녘의 산 전체를 하나의 커다란 절구로 여기고 있으니 이야말로 인문학적 상상력이라 하겠다.

연석에 대해선 별다른 문헌 자료가 없지만 더 서북쪽의 산을 일컫는 것으로 보인다. 해가 그곳에 이르면 이젠 절구 속에 담긴 꼴이니 下舂(하용)이라 한다.


원문: 해가 비천에 이르면 드디어 희화를 멈추고 육리를 쉬게 하는데 이때를 현거라고 한다. 한다. 至于悲泉(지우비천) 爰止羲和(원지희화) 爰息六螭(원식육리) 是謂縣車(시위현거).

해설: 비천, 슬픈 샘이란 말 역시 별다른 문헌근거가 전해지지 않는다. 아무튼 여기에 이르면 이윽고 羲和(희화)를 멈춘다고 하는데 여기에선 태양을 싣고 달리는 마차의 의미이다. 희화가 태양을 싣고 하늘을 달려가는 마차 혹은 전차라고 할 때 이는 그리스 신화의 파에톤(Phaethon)과 동격이 된다.

파에톤은 고대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가 쓴 ‘변신 이야기’ 속에서 태양신의 아들 또는 포에부스의 아들로 나타나고 있다. 가끔 파에톤은 아폴론과 동격시되는데 이는 후대에 와서 이야기가 변형된 것이라 한다. 아무튼 파에톤이 모는 마차는 天馬(천마) 네 마리가 끌고 다니면서 천공을 운행한다.

이와 동일한 마차가 바로 희화인 것이고 끄는 말은 말이 아니라 용이 되니 바로 여섯 마리의 용 즉 六螭(육리)이다. 이때를 마차를 세운다고 해서 縣車(현거)라고 한다는 얘기이다.

용비어천가에서 ‘해동육룡이 나르샤’란 표현이 있는데 같은 맥락이다. 육리에서 螭(리)란 때론 이무기를 뜻하기도 한다. 여섯 마리 용이 끄는 마차이니 얼마나 힘차고 빠를까! 영화 벤허에선 말 네 마리인데 여기에선 여섯 마리이니 말이다. 원래 말 여섯 마리가 3열로 끄는 마차는 황제만이 타던 御駕(어가)에만 쓰였다.

사실 羲和(희화)에 대해선 실로 설이 분분하고 근거문헌도 엄청나게 많기에 이 글에선 자세하게 얘기하지 않겠다.


원문: 해가 우연에 이르면 황혼이라 하고 몽곡에 빠지면 정혼이라 한다. 至于虞淵(지우우연) 是謂黃昏(시위황혼) 淪于蒙谷(운우몽곡) 是謂定昏(시위정혼).

해설: 마차를 세웠으니 해는 마차에서 내려 걷는다. 그러다가 虞淵(우연)이란 연못에 이를 때를 황혼이라 하고 다시 더 걸어가서 蒙谷(몽곡)이라고 하는 아주 깊은 연목에 빠지게 되면 그때를 정혼이라 한다는 것이다.

몽곡에 대해 회남자에 주해를 단 자는 그저 북방의 산이라 하고 있지만 문맥으로 보면 맞지 않는다. 몽곡에 빠진다, 즉 빠질 淪(윤)자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다른 문헌을 찾아보면 후한 시대의 왕충이 쓴 論衡(논형)이란 책에는 북방의 깊고 큰 바다 즉 北海(북해)라고 묘사되고 있으니 그게 더 합당하다.

아무튼 비천에 이으러 마차에서 내린다고 했으니 해는 서북방에서 진 셈이고 그 이후론 마차와 여섯 마리 용을 쉬게 한 다음 물가로 가서 빠져든다고 한다. 해가 진 다음의 밤 시각을 말하는 것이다.


원문: 해가 우연의 물로 들어가서 몽곡의 물속에서 새벽까지 지새운다. 日入于虞淵之汜(일입우우연지사) 曙于蒙谷之浦(서우몽곡지포).

해설: 앞의 말을 반복하는 구절로서 해가 밤을 보낸다는 의미이니 밤 시간이다. 재미난 점은 물가를 뜻하는 汜(사)와 긴 물가를 뜻하는 浦(포)란 글자를 쓰고 있다는 점이다.

원문: 해는 구주와 칠사를 운행하니 그 거리는 오억만칠천삼백구리인데 이를 조주혼야로 나눈다. 行九州七舍(행구주칠사) 有五億萬七千三百九里(유오억만칠천삼백구리) 離以爲朝晝昏夜(이이위조주혼야).

해설: 해가 다니는 거리는 실로 엄청날 것이라 여겼던 고대인들이다. 당시 중국인들에겐 세상이 아홉 개의 구역 즉 九州(구주)로 구분이 된다 여겼다, 거기에 七舍(칠사)란 말은 제법 설명을 필요로 하는 말이지만 간단하게 정북에서 정남까지를 갔다가 되돌아오는 과정을 말한다.


그 엄청난 거리가 과연 얼마나 될까 고대인들은 당연히 궁금했을 것이다. 이에 누군가 아주 엄밀하게 측정해 보았더니 저처럼 엄청나다는 것이다.

이 책을 쓴 때가 前漢(전한) 시절이니 1리는 415.8미터가 된다. 따라서 오억만칠천삼백구리라 하는데 오억만은 5兆(조)를 뜻한다. 따라서 5조 7309리가 되는데 이를 계산해보려니 계산기 자리가 부족해진다. 역시 천문학적 단위가 된다. 그냥 엄청나다고 해두자. 참고로 말하면 당시엔 아직 兆(조)라고 하는 숫자단위는 없던 시절이다.

이런 해의 운행을 시각으로 나누면 아침 즉 朝(조)과 한낮의 晝(주), 늦은 오후를 뜻하는 昏(혼)과 밤 시간인 夜(야)가 된다는 얘기이다.

이상으로 회남자 천문훈의 일부 단락인 해의 운행에 관한 번역과 해설을 마쳤다.


약간 보충하는 얘기를 해본다.

열흘 단위에 대해 지금도 사람들은 旬(순)이란 표현을 쓴다. 한자를 모르는 사람들도 대충 뜻은 알고 있다. 旬(순)이라 글자를 보면 날 日(일)을 바깥에서 에워싸는 쌀 勹(포)로 되어있다. 가령 다음 달 상순까지 일을 마친다 할 때 흔히 사용한다.

그런데 순이란 글자 또는 개념이 생겨난 배경을 보면 상당히 흥미롭다.

앞글에서 옛날 사람들은 동해 멀리 부상 나무에 열 마리 금 까마귀가 있어 각각 해를 하나씩 등에 지고 있다는 식으로 생각했다는 말을 했다. 왜 열 개의 태양을 상상했던 것일까?

이 점에 대한 유력한 단서는 옛날 날을 기록할 때 쓰던 방식이 바로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의 열 개 글자, 즉 十干(십간)이었다는 점이다. 즉 甲日(갑일)은 갑의 태양이 뜬 것이고 乙日(을일)은 을의 태양이 뜬다는 식으로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그렇기에 앞글에서 羿(예)라고 하는 용사가 아홉 개의 태양을 활로 쏴 떨어뜨렸다는 전설 속엔 옛날에 曆法(역법), 즉 연도와 일자를 기록하고 정하는 체계가 혼란스러웠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하겠다.

고대 이집트 신화에는 피닉스 즉 불사조의 전설이 있다. 이집트 쪽에서 보기엔 동쪽의 아라비아 사막에서 해가 떠오른다. 그 때문에 피닉스는 아라비아의 사막에서 떠오르는 것으로 되어 있으며 500-600년마다 스스로의 몸을 불태워 죽고 그 재 속에서 다시 되살아난다는 전설 혹은 신화이다.

고대 중국인들은 해가 금 까마귀 등에 실려 동쪽 바다에서 떠올라 하늘을 가로 질러 매일 저녁 북녘의 깊은 바다 속으로 들어가 새벽까지 지새운다는 생각, 열 개의 해가 있으니 매일 매일 다른 해가 떠오른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우리 모두 매일 해를 보면서 날을 보낸다. 이에 현실에서 하루의 해를 보노라면 그저 동쪽에서 떠올라 남쪽 하늘을 돌아 서산으로 기운다. 그리고 밤이다. 그게 당연히 그렇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별 재미가 없다. 또 지구가 자전하기에 해가 마치 떴다가 지는 것처럼 보인다는 과학적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기에 더더욱 해의 하루 행보에 대해 관심이 없다.

그런데 생각해보라, 옛 사람들은 그런 사실을 전혀 몰랐다는 것, 그러면서 끊임없이 해의 운행에 대해 호기심과 흥미를 느꼈다는 사실, 이에 오늘의 글과 같은 판타지가 만들어졌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흥미롭다.

현실의 삶은 사실 그다지 재미있지 않다. 당연한 것을 당연시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고통스럽거나 짜증날 때가 더 많다. 하지만 우리 모두 가슴 한 편으론 오늘 혹시 즐거운 일이 생기지 않을까 기대하고 공상해본다. 그 마음이 바로 판타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시작이다. 판타지란 뻥인 줄 알면서도 빠져주는 것, 빠져들어 적극적으로 즐기는 일이니 삶의 활력소가 된다.

모처럼 의욕을 내어 글을 쓰기 시작했고 또 마쳤다. 워드로 한문을 찾아서 쓰는 작업, 한글로 치고 F9을 쳐서 창이 열리면 해당 한자를 찾아서 엔터 키를 치고 여기에 다시 독음을 달기 위해 괄호를 열고 닫는 작업은 시간과 에너지가 많이 필요한 작업이니 그렇다.

오늘 이 글을 쓰고 나니 지금은 그만 두었으나 예전엔 호호당의 교양강좌란 프로그램을 진행했던 기억이 새삼 떠오른다. 일종의 인문학 강좌였는데 오늘과 같은 내용을 포함해서 다양한 주제들을 다루면서 배우는 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기억이 새롭다. 강의를 듣는 이가 서른 명만 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이에 오랜만에 비록 힘들더라도 이런 내용을 소개하게 되어 기쁜 마음이다. 이 모두 나 호호당이 즐기는 판타지를 독자들과 함께 공유했으면 하는 마음에서였다. 부디 이번 글을 즐겨주셨으면 한다.

(공지사항: 이번 토요일 강좌는 그 시각이 마침 태풍이 통과하는 때라서 부득이 연기해서 다음 주 화요일 오후 7시 강의실 402호에서 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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